엔비디아는 한국의 PC 및 노트북 이용자들에게 익숙한 브랜드입니다. 많은 PC와 노트북에 엔비디아의 GPU(그래픽처리장치)가 장착되기 때문이죠. 특히 고사양의 PC를 요구하는 게임을 즐기거나 디자인 작업을 많이 하는 이용자에게는 고성능의 GPU가 필수적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기업들도 엔비디아의 GPU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어요. 바로 인공지능(AI)을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엔비디아의 GPU가 핵심 부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미국·중국과의 AI 반도체 분야 기술력 격차를 좁히기 위해 국내 AI 반도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육성책을 내놓기도 했어요.
그렇다면 엔비디아는 어떻게 AI 반도체 분야에서 강자가 됐을까요? 엔비디아의 창업과정과 AI 반도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나게 된 계기를 살펴보는 것은 AI 반도체 분야에서 창업을 준비하거나 이미 사업을 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에게 유익한 참고사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CPU 대신 개발한 GPU, '신의 한수' 되다
엔비디아의 창업자 젠슨 황은 1963년 대만 타이베이시에서 태어나 엔지니어였던 부모님을 따라 태국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어요. 태국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나며 정세가 불안해지자 젠슨 황 가족은 미국으로 건너갔죠. 젠슨 황이 열 살이 되던 해였어요. 그는 켄터키 주에 있는 오네이다 밥시스트 학교에서 학업에 매진했습니다. 오레곤 주립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던 그는 컴퓨터로 역동적인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대로 즐기기 어려웠던 점을 아쉬워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대로 구동시킬 수 있는 사양을 갖춘 CPU(중앙처리장치)가 부족했습니다. 젠슨 황은 언젠가는 PC에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나올 것이라고 보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어요. 그는 LSI로직이라는 회사에서 엔지니어링과 마케팅 및 일반 관리 업무를 맡았었고 AMD에서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자로 근무했습니다.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공학석사(MSEE) 학위까지 받았던 그는 실무 능력까지 갖춘 가운데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어요.
젠슨 황은 1993년에 썬 마이크로시스템에서 그래픽 칩셋을 설계하던 엔지니어 커티스 프리엠, 전자기술 전문가였던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함께 엔비디아를 설립했습니다. 그들은 고작 침대 2개만 있는 아파트에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가능성과 비전은 인정을 받았어요. 세쿼이아캐피털 등 벤처투자사(VC)들은 엔비디아에 2000만달러(약 247억원)를 투자했고 세 창업자들은 이를 기반으로 사업을 키워나갔습니다.
젠슨 황은 CPU를 만들고 싶었어요. 멀티미디어를 처리하는데 특화된 CPU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죠. 하지만 당시 CPU 시장은 인텔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386, 486, 펜티엄 등으로 이어지는 X86 시리즈를 내세워 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이죠. 젠슨 황이 창업 전에 근무했던 AMD도 인텔과의 경쟁이 힘겨웠어요. 이제 막 시작한 엔비디아에게 인텔은 너무 큰 산이었던 셈이죠. 결국 젠슨 황은 GPU 개발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연구개발(R&D) 끝에 1995년 9월 'NV1'이라는 엔비디아의 첫 GPU를 출시했습니다.
이후 엔비디아는 전세계 GPU 시장을 주도하는 사업자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2002년 3월 엔비디아코리아도 설립하며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IT(정보기술) 기업들은 한국 법인에 마케팅·영업 인력을 주로 두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엔비디아코리아는 전직원의 80% 이상을 국내 개발자 및 기술 지원 인력으로 채웠습니다. 한국 법인을 단순한 판매 채널이 아닌 기술력 강화를 위한 R&D를 수행하는 곳으로 활용하는 셈이죠.
시각지능 대회서 빛난 GPU의 성능
엔비디아가 선보인 GPU는 병렬 컴퓨팅 방식 기반으로 고사양의 그래픽을 빠른 연산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었습니다. PC 게임 산업이 성장하는데 GPU가 큰 몫을 한 이유입니다.
복잡한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GPU의 능력은 GPU가 AI 반도체 시장에서 주목받게 된 밑거름이 됐습니다. AI 반도체란 AI가 데이터를 학습하는데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는 시스템 및 메모리 반도체를 총칭하는 용어입니다.
연구자와 기업들은 AI에 대한 연구를 하며 주로 CPU를 썼습니다. 하지만 2012년 시각지능 대회 '이미지넷'을 통해 AI의 학습과 프로그래밍에 GPU가 더 적합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미지넷은 1000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된 100만개의 이미지를 인식해 그 정확도를 겨루는 대회였어요.
2012년 전까지는 기계의 이미지 인식률이 75%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 대회에서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알렉스 크리제브스키가 선보인 '알렉스넷'은 기존의 시스템과 달랐습니다. 기존의 CPU와 달리 인간의 뇌 구조를 본따 만든 인공신경망 모델인 나선형신경망을 이용해 심층 신경망을 구현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존의 기계학습법(ML)을 더 발전시킨 딥러닝으로 평가 받았어요.
딥러닝에 대한 연구는 2012년 대회 이전부터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발전 속도가 더뎠던 것은 당시의 CPU만으로는 딥러닝이 요구하는 엄청난 양의 연산처리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등장한 병렬 컴퓨팅에 유리한 엔비디아의 GPU를 활용한 알렉스넷이 등장했고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습니다. 이후 엔비디아의 AI 프로젝트가 업계의 관심의 대상이 됐고 GPU가 고사양의 게임뿐만 아니라 AI 프로그래밍에도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주요 기업들이 AI 연구에 GPU를 활용하기 시작했고 엔비디아의 고객군도 다양해졌습니다. 완성차 제조사 메르세데스 벤츠(이하 벤츠)도 엔비디아의 고객사입니다. 벤츠는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된 자동차를 제작하는데 엔비디아의 제품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2024년부터 모든 벤츠의 자동차에는 소프트웨어 정의 컴퓨팅 아키텍처가 포함될 예정입니다. 이는 자동차가 업데이트가 가능한 고성능 컴퓨팅 장치로 진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밖에 펩시코와 아마존 로보틱스는 디지털 트윈 개발에, 방사선 치료 기업 애큐레이는 새로운 의료 소프트웨어 개발에 엔비디아의 제품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제품 고도화를 위해 우수 인재 채용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회사는 △AI △컴퓨터비전 △그래픽스 △오토모티브 플랫폼 등 엔비디아의 기술이 적용되는 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인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코리아도 자사 홈페이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링크드인을 통해 채용공고를 내고 있어요. 지원자가 온라인으로 지원을 하면 회사의 내부 검토를 거쳐 인터뷰가 진행됩니다. 인터뷰 방식은 전화통화·화상면접·대면면접 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