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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2024-04-02 1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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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멈출라…日 업체들, ‘일본판 주52시간제’ 시행에 대응책 마련 분주
내용

입력2024.04.02. 오전 10:40

 

1일, ‘일하는 방식 개혁’ 유예 종료 
의료·물류·건설 분야, 시간 외 근무 규제 적용 
트럭 운전사, 연 960시간 이상 근무 금지 
안 그래도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인력난
2030년까지 트럭 운전사, 2015년 대비 30%↓ 전망
화물 배송 능력은 3분의 1 줄어들 듯



일본이 고속도로에 무인 트럭 전용 노선을 만들고, 고속도로에서 트럭 제한 속도를 시속 90㎞로 낮추고, 일반 면허로도 운전할 수 있는 트럭을 도입하는 등 전면적인 물류망 개조에 나섰다. 이 모두는 트럭 운전기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다. 일본에서 1일부터 의료·물류·건설 분야 종사자에게도 법정 초과 근무시간(시간 외 근무) 규제를 적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 공영방송 NHK 등 현지 언론은 1일, 이날부터 시행에 들어간 ‘2024년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2024년 문제는 ‘일본판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예외 대상이었던 의료·물류·건설에도 해당 법안이 적용되면서 빚어질 문제를 뜻한다. 일본은 야근에 따른 과로사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지난 2018년,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을 제정했다. 해당 법안은 시간 외 근무를 월 45시간, 연 360시간으로 규정한다. 본래 해당 법안은 2019년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으나, 바로 적용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의료·물류·건설 분야에는 5년간 시행을 유예했고, 이달 1일부터 적용에 들어갔다. 이에 의사와 트럭 운전사는 각각 연 960시간, 건설업 노동자는 연 720시간의 시간 외 근무 한도가 적용된다.
 

일본 도쿄 동쪽 지바의 고속도로를 따라 주차 구역에 배달 트럭이 주차돼 있다. / 로이터 
문제는 물류 업계가 5년 동안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저출생 문제로 일할 사람이 없는데 시간 외 근무 한도가 시행되면서 그나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하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이에 일본 물류가 멈춰서고 이로 인해 일본 경제는 물론 일본인의 일상이 흔들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닛케이(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화물 운송의 90%는 트럭이 담당한다.

물류는 일본 경제의 근간을 지원한다. 물류는 제조업부터 음식점까지 재료나 부품을 배송하는 역할을 맡는다. 일본의 한 민간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어떤 대책도 취하지 않았을 경우, 전체 택배의 14%가 운송 중단된다. 택배 7개 중 1개에 해당한다. 노무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 유예 기간 종료로 화물 배송 능력은 2030년까지 현재의 3분의 1 이상 줄어들고, 운전자 수도 2015년에 비해 35% 감소할 전망이다.
 

“배송 효율을 높여라”…경쟁사 활용하고 교대 근무 시행


일본 기업은 택배 대란이 우려되자 배송 효율을 높이려는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편의점 업체인 ‘로손’은 지난해 12월부터 도시락, 샌드위치 배송을 하루 3회에서 2회로 줄였다. 배송 횟수를 줄여 배송 트럭이 가동하지 않는 시간대를 활용해 6일 이후부터 음식 체인점 ‘와타미’의 식사 택배 서비스를 맡을 예정이다. 또 다른 편의점 업체 ‘훼미리마트’는 2월 초부터 ‘코카콜라 재팬’ 배송망을 활용해 각 점포에 상품을 전달 중이다. 일본우편은 운전사 한 명이 담당하던 도쿄에서 출발해 후쿠오카로 가던 경로의 중간 지점인 오카야마에서 운전사와 트럭을 바꾸기로 했다. 이 구간은 1000㎞가 넘어 운전사가 하루 12시간 일해야 했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일할 경우 근무시간을 하루 2시간씩 줄일 수 있다. 다만, 전체 배송 물량의 3.4%는 배송 기간이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류에 일본판 52시간제가 도입되면서 택배비는 상승할 전망이다. 사가와익스프레스와 야마토 운수는 평균 택배 요금을 각각 7%, 2% 인상하기로 했다. 유류비 상승과 더불어 2024년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하청 기업을 포함한 직원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다. 양사 모두 앞으로 2년 동안 정기적으로 택배 요금을 점검할 방침이다.
 

트럭 대체재로 주목받는 철도·페리


2024년 문제에 물류 운송 수단을 트럭에서 철도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생겼다. NHK에 따르면 홋카이도에서 삿포로로 향하는 철도 화물은 농작물 등으로 적재량이 많다. 반면 삿포로에서 일본 각지로 향하는 철도화물은 적재량이 적어 컨테이너에 빈 공간이 많다. 이에 JR화물은 올해 2월, 도매업자 등과 협력해 실증실험을 했다. 주로 트럭으로 물류를 배송해 온 삿포로~홋카이도 구간의 물류 수송을 철도로 전환했을 경우 걸리는 시간, 비용을 확인한 것이다. NHK는 “화물 열차에 짐을 적재하고 출발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지만, 운전기사의 노동시간을 삭감하는 측면에서 보면 장점이 크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기존 트럭 운송을 철도 운송으로 전환했다. 홋카이도 도마코마이시에 있는 소 먹이 제조 공장은 약 330㎞ 떨어진 홋카이도 북부 호로노네쵸에 있는 보관 시설까지 트럭으로 물건을 운송했지만, 지난해부터 일부 구간을 철도로 전환했다. 트럭으로 운송할 경우 편도 5시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운전사 혼자 해당 구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공장이 있는 도마코마이시에서 나고기시까지는 JR화물을 이용하고, 나고기시부터 보관 시설이 있는 호로노네마치까지는 트럭으로 운반한다. 이를 통해 트럭 운전사의 노동 시간을 왕복 4시간 줄일 수 있다.

일각에선 트럭 수송 대신 페리를 이용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규슈에서 간사이로 출하되는 야채와 과일 대부분을 트럭이 운반했다. 하지만 현재는 규슈 각지의 야채와 과일을 중앙도매시장에 있는 물류 거점에 모은 다음 트럭에 실어 시내 항구로 이동한다. 이후 관토나 간사이로는 페리로 운반한다. 3~4월이 제철인 후쿠오카 특산품인 브랜드 딸기 ‘아마오우’는 주 1~2회 페리를 타고 도쿄로 향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트럭 운전기사 임금 올려야 목소리도


하지만 트럭 운전기사 감소 현상을 막지 못하는 한 물류 대란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커지고 있다. 트럭 운전기사의 임금은 다른 산업보다 5~10% 낮다. 정부 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중소 트럭 운송 회사에서 일하는 운전자 급여는 전체 산업 근로자보다 평균 12% 적었다. 이에 트럭 운전기사는 장기간 일하지 않으면 일정한 수입을 얻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 유예 기간 종료로 노동 시간이 단축, 결국 수입이 줄어들어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오코시에서는 새롭게 트럭 운전기사 일을 시작하는 사람보다 그만둔 사람이 6만 명 많다. 10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시간당 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물류 대란은 결국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구조로 이어질 것이기에 국가 전체가 나서 물류 시스템과 관련한 가격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일본 소비자는 ‘무료 배송’이라는 이름 아래 물건을 주문할 때 별도의 배송비를 내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 물류업체 관계자는 닛케이에 “현재 업체들이 배송비를 부담하고 있기에 ‘무료배송’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앞으로 물류 관리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소비자는 배달 비용을 더 많이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와카나 슈토 도쿄 릿쿄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배송비를 눈에 띄게 표시하면 소비자가 저렴한 가격 대신 배송 도착 시간을 늦추는 선택지를 택할 것”이라며 “이것만으로도 물류 부담을 완화하고 물류비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미하 기자 viva@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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