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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3-04-11 10:5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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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한국판 'NASA'는 어불성설이다
내용

 

입력2023.04.10. 오후 1:17   수정2023.04.10. 오후 2:53

 



지난달 15일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 우주항공청 특별법안 공청회는 실망스러웠다. 날 선 분석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없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민간 업체 대표로 참여한 김병진 쎄트렉아이 의장이었다. 카이스트(KAIST) 시절 우리별 위성을 쐈고 현재는 한국 위성 제작 기술의 위상을 전 세계에서 드높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왜 우주항공청이 필요한가’라는 원칙을 되짚어 줬다.

그동안의 우주개발거버넌스 체제 개편은 우선 독립적·자율적인 우주개발 컨트롤 타워를 세워 정치 외풍을 막고 부처 간, 민관 협력을 주도할 강력한 기관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우주가 경제·안보·국방 등에서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됐는데, 한국은 여전히 수많은 과학기술 분야 중 하나로만 여기고 정권 치적 쌓기 수단으로 삼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달 탐사 일정을 정치적 이유로 앞당긴 것, 나로호 발사 실패에 진노한 이명박 정부가 독자 발사체 개발 예산을 줄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부처 내에서도 힘에서 밀리고 있다. 최근 국방부가 고체 연료 우주발사체 시험 발사를 강행했지만 과기정통부는 한마디도 못 했다. 법적으로 우주발사체 발사를 총괄하는 것은 과기정통부임에도 말이다. 전문성 강화도 핵심 과제다. 2년마다 업무가 바뀌는 공무원 조직은 전문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현장 연구개발(R&D) 조직과 마찰도 잦았다. 미·중 우주개발 경쟁 등 격화되고 있는 우주 외교에서 신뢰성·대표성을 높여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당시 공청회에서 김 의장의 이 같은 지적은 매우 의미 있는 일침이었고, 지금은 더욱 그렇다. 지난 4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의 우주항공청 설치 특별법안과 다음날 발의된 더불어민주당의 우주전략본부 설치법안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칫 우주개발거버넌스 개편이 ‘사공 많은 배’처럼 산으로 갈 위기에 처해 있다. 조직·개인이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목적과 수단을 헷갈릴 때다. 이럴 때일수록 처음으로 돌아가 원칙과 중심을 생각하고 이에 맞게 우주개발거버넌스 개편 방향을 점검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몇 가지만 지적한다. ‘한국판 항공우주국(NASA)’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나라 우주개발 예산은 현재 약 8000억원, NASA는 30배가 넘는 30조원대다. 기술 수준은 최소 30~50년 이상 뒤처져 있다. 물론 그럼에도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우주 개발 ‘도박판’에 뛰어들 최소한의 판돈은 쥐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이룰 가능성은 적다. 잘해야 자국용·협상 지렛대로 쓰거나 틈새시장 개척 정도가 가능하다. NASA처럼 R&D를 병행하겠다는 것도 혼란 가능성이 더 크다. 기존 국책 연구기관들이 이미 잘하고 있지 않나. 어떻게 하면 과학 분야의 ‘종합 예술’ 격인 우주 개발에서 적은 예산·소수 정예로 R&D와 산업 육성에 성공할 수 있을지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

둘째, 과기정통부는 우주를 포기해야 한다. 독립적·자율적 조직을 위해서라면 과기정통부 산하 차관급 ‘우주항공청’은 한계가 명확하다. 대통령 직속이 안 된다면 차라리 국무총리 산하 기관이 더 낫겠다. 독자적인 법률·규칙 제정이 가능해야 조직·인사·예산의 자율권도 지켜진다. 셋째, 앞으로 10여년간 기껏 1조원 안팎의 정부 우주개발 예산이 사실상 한국 우주 산업이 가진 밑천의 전부다. 기술 대혁신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현실은 냉혹하다. 민간 우주 산업을 키우는 데 더욱 세심히 노력해야 한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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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202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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