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4.04.16. 오전 9:03 수정2024.04.16. 오전 9:15
인민인도당, 여권블록 NDA로 출사표 라지나트 싱 인도 국방장관(왼쪽부터), 나렌드라 모디 총리, 제이피 나다 인도인민당(BJP) 의장이 14일(현지시각) 뉴델리 인도인민당 당사에서 총선 공약집을 들어보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세계적 인구대국 인도가 19일부터 앞으로 5년간 권력의 향배를 결정할 총선을 치른다. 세번째 임기에 도전하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번 총선에서도 승리해 집권을 이어가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이번 선거에 투표할 수 있는 유권자는 전체 인구 10억4000여만명 가운데 18살 이상 성인 9억6800여만명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러시아의 유권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세계 최대 유권자 규모다. 많은 유권자가 넓은 영토 곳곳에서 참여하다 보니 투표소가 100만곳이 넘고, 투표 기간도 6월1일까지 6주간이나 된다. 결과는 투표 마감 사흘 뒤인 6월4일 발표된다. 이번 총선에 걸린 연방 하원의원 의석은 543석. 우리나라 처럼 최다득표자 1명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로 치러지는 선거에서 272석 이상 과반을 얻은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총리를 맡아 내각을 꾸리고 앞으로 5년간 정부를 운영하게 된다. 여론조사는 모디 총리 ‘압승’ 예고 현재 총선 지형은 모디 총리가 이끄는 집권여당 인도인민당(BJP)에 라훌 간디의 인도국민회의(INC) 등 야당이 도전하는 형국이다. 인도인민당은 2014년 282석을 얻어 집권한 뒤 5년 뒤인 2019년엔 303석으로 의석을 늘리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이번에 세번째 연속 집권을 노리는 인도인민당은 친여권 정당들과 함께 ‘전국민주연합’(NDA)을 결성해 나서고 있다. 모디 총리를 차기 총리 후보로 다시 지명하는 등 압승을 목표로 기세를 올리고 있다. 반면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뒤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와 딸 인디라 간디, 손자 라지브 간디 총리 등으로 이어지며 집권해온 인도국민회의는 2014년 44석, 2019년 52석으로 추락을 거듭했다. 라지브 간디의 아들인 라훌 간디는 그동안 정치명가의 전통을 재건하겠다는 각오로, 인도 전역을 가로지르며 2022년엔 6700㎞, 지난해엔 3500㎞를 행진하며 지역 주민과 접촉면을 넓히는 등 지지세를 모아 왔다. 인도국민회의도 이번 선거를 앞두고 인도인민당에 맞서 20여개 군소 야당 및 지역 정당과 연대해 ‘전국인도개발포괄연합’(INDIA)을 결성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참여정당 간 정치적 지향과 주도권을 둘러싸고 이견을 드러내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누구를 차기 총리 후보로 내세울지를 놓고도 의견이 엇갈려, 결국 총선에서 승리하면 그때 정하는 것으로 결정을 미뤘다. 소냐 간디(왼쪽부터), 말리카르준 카르게 당대표, 라훌 간디 등 인도국민회의(INC) 인사들이 5일 뉴델리 기자회견에서 공약집을 들어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선거 판세는 인도인민당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다. 지난 3일 ‘인디아 티브이-시엔엑스’(India TV-CNX)가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인도인민당이 혼자 힘으로 절반을 훌쩍 넘긴 342석을 얻는 등 여권블록인 전국민주연합이 모두 399석을 획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국민회의는 38석에 그쳤으며, 전국인도개발포괄연합 전체로도 겨우 94석을 얻을 뿐이었다. 여당, 힌두민족주의 열망 등에 업어 인도인민당의 이런 압도적 우세는 무엇보다 인도인민당의 ‘힌두 민족주의’가 인구의 80%에 이르는 힌두교도의 열정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힌두문화의 복원과 순수 힌두의 나라 ‘힌두스탄’ 건설을 내세우는 인도인민당은 1980년 창당했으며, 1990년대 탈냉전 이후 본격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1992년 인도 북부 도시 아요디아에서 힌두교도들이 16세기 무굴제국 시절 건립된 이슬람 사원에 난입해 사원을 파괴한 사건은 힌두 민족주의에 불을 붙인 대표적 사건으로 꼽힌다. 이 사건 이후 힌두 민족주의의 정치조직인 인도인민당은 1996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국민회의를 제치고 일약 제1당으로 치솟는 저력을 발휘했다. 모디 총리는 집권 기간 내내 힌두 제일주의를 표방하며 힌두 민족주의를 부추겼다. 지난달 22일에는 아요디아 시태 이후 32년 만에 무너뜨린 이슬람 사원터 위에 4천억원을 들여 새로 지은 힌두교 사원의 개원식을 열고 “새 시대가 열렸다”고 선포해 힌두교도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비교적 양호한 경제 성적표도 인도인민당의 득점 요인이다. 인도 경제는 모디 총리가 처음 집권한 2014년부터 10년간 연평균 성장률 7%에 이르는 고성장을 거듭했다. 그동안 경제규모는 세계 8위에서 5위로 몸집을 키웠으며, 2027년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로 뛰어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인도인민당 지지자들이 3월 31일 메루트에서 열린 당 유세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연설을 듣고 있다. AP 연합뉴스 최근 경기도 코로나19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회복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10~12월 기간에는 제조업과 건설 분야의 건실한 성장에 힘입어, 전문가의 예상을 뛰어넘는 8.4%의 성장를을 기록했다. 정부의 대기업 우선정책과 빈부격차 확대, 치솟는 청년 실업률 등에 대한 쓴소리도 나오지만, 지속적인 성장세에 묻혀 크게 들리지는 않는 형국이다. 국민회의 “차별·배제 반대” 인도국민회의 등 야당은 “인도인민당의 힌두 민족주의 노선이 인구 14%에 이르는 이슬람계 주민에 차별과 배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실제 모디 총리는 집권 기간에 이슬람계가 다수인 잠무카슈미르 지역에 허용됐던 광범한 자치권을 박탈했고, 시민권법을 개정해 인근 나라에서 종교적 박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민권 신청 자격을 부여하며 무슬림만 배제했다. 또 우타르프라데시주 등에선 인도인민당의 주도로 힌두와 이슬람의 결혼을 금지했고, 곳곳에서 힌두교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소를 먹었다는 의혹만으로 무슬림이 폭행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는 일까지 빈번했다. 이에 따라 야당은 “종교·카스트·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갈라놓는 분열의 정치를 멈춰 세우기 위해 우리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또 “인도인민당이 정치와 종교의 엄격한 분리를 뜻하는 세속주의 원칙을 어기고 있다”며 “인도인민당이 재집권하면 인도를 종교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힌두 국가로 탈바꿈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폭주하는 힌두 민족주의에 맞설 현실적인 대안 이념을 내놓진 못하고 있다. 인도국민회의는 영국의 식민지 시절인 1885년 결성된 뒤 독립운동을 주도하며 폭넓은 국민적 지지를 받은 역사적 정통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독립 이후 미-소 냉전 시기 이들이 주도한 외교적 비동맹과 온건 사회주의 성향의 정치 이념은 1990년대초 탈냉전 이후 점차 대중의 소구력을 잃어가는 추세다. 정부·여당의 사정 정국에 야당 기반 ‘흔들’ 국민회의 등 야당은 사정당국을 동원한 모디 정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조직 면에서도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인도 사법당국은 이달 초 총선을 앞둔 시점에 유력 야당 ‘보통사람의 당’(AAP)의 지도자이자 수도 델리 지방정부의 제1장관인 아르빈드 케지리왈을 ‘돈 세탁’ 혐의로 전격 구속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인도 금융당국은 탈세 등의 혐의로 제1 야당 인도국민회의의 은행 계좌를 동결해 사실상 선거 캠페인 자금줄을 차단했다. 야당은 “선거를 앞두고 야당을 옥죄려는 모디 정부와 인도인민당의 정치적 음모”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인도인민당은 “정치적 개입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인도국민회의 지지자들이 12일 인도 남부도시 코임바토르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인사의 여당으로의 이탈 줄을 잇고 있다. 인도인민당의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모디 총리의 첫 집권 이후 지금까지 야당 인사 8천명이 인도인민당으로 당을 옮겼다. 이들 중에는 사정당국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패 혐의로 수사받고 있던 유력 야당인사 100명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집권 여당으로 당적을 옮긴 뒤 대부분 기소되지 않고 무혐의 처리됐다. 야당의 무기력한 대응은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제1야당인 국민회의의 경우 네루-간디 가문이 측근들로 이뤄진 인의 장막에 싸여 풀뿌리 대중과 연계를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인도인민당으로 당을 옮긴 춘니 랄 사후 의원은 “당 지도부가 선거 패배의 원인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있고, 아무 변화도 없다”며 “개인 기업처럼 운영되는 당에서 어떤 희망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