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4.04.22. 오후 12:29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세계에 알린 테리 앤더슨 전 AP통신 특파원이 2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76세. AP통신은 이날 앤더슨 전 특파원이 뉴욕주 그린우드레이크의 자택에서 심장 수술로 인한 합병증으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1947년 미 오하이오 로레인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해병대에 입대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귀국 후에는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뒤 AP통신에 입사했다. 앤더슨은 한국에서 광주 5·18 민주화운동 현장을 직접 취재해 전 세계에 실상을 알린 기자로 잘 알려져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이 2020년 공개한 당시 AP기사에 따르면 고인은 ‘광주 폭동’이라고 주장한 정부 발표와 정반대의 사실을 기록해 보도했다. 고인은 당시 기사에서 “광주 시민들 시위가 처음에는 평화롭게 시작됐지만, 공수부대들이 5월 18∼19일 시위자들을 무자비하게 소총과 총검으로 진압하면서 격렬한 저항으로 변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기사에는 계엄군이 외곽으로 물러나 있던 5월 23일 시민들이 거리를 청소하고 곳곳에 있는 잔해와 불탄 차들을 치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테리 앤더슨 전 AP 특파원. AFP연합뉴스 고인은 또 2020년 발간된 책 ‘AP, 역사의 목격자들’에서 “계엄군이 ‘폭도’ 3명이 죽었다고 말했지만,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시신을 모조리 센 결과 첫날 한 장소에서만 179구를 발견했다”고 기록했다. 앤더슨과 광주를 함께 취재한 존 니덤은 1989년 LA타임스 기고에서 앤더슨이 전남도청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사진을 찍다가 계엄군의 총격을 받았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앤더슨이 계엄군의 경고에도 사진을 계속 찍자 계엄군이 처음에는 호텔 방을 향해 머리 높이로 사격하다가 이후에는 가슴 높이로 총을 쐈고, 고인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 덕분에 총알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테리 앤더슨 전 AP 특파원이 1992년 6월 22일 오하이오주 로레인에서 열린 퍼레이드에 참가해 군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앤더슨은 미국에서는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전쟁을 취재하다 무슬림 시아파 무장단체에 납치돼 7년 가까이 구금됐다 풀려난 인물로 유명하다. 고인은 1985년 3월 16일 함께 테니스를 친 AP 사진기자를 차로 집에 데려다준 뒤 헤즈볼라 대원들에게 납치됐고 이후 7년간 구금됐다. 당시 그는 결혼을 앞둔 상태의 예비 신랑으로, 약혼녀는 임신 6개월이었다. 테리 앤더슨 전 AP 통신 특파원이 1991년 12월 12일 AP 워싱턴 지국을 방문한 동료 짐 에이브럼스와 포옹하고 있는 모습. 당시 그는 이슬람 무장 세력으로부터 납치됐다가 풀려난 직후였다. AP연합뉴스 앤더슨은 1991년 12월 석방돼 7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았다. 고인은 이란 정부가 그의 납치에 역할을 했다는 법원 판결에 따라 이란 동결 자금 수백만 달러를 보상으로 받았다. 그러나 보상금 대부분을 투자로 잃었으며, 2009년엔 파산 신청을 했다. 그는 플로리다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다 2015년 은퇴했다. 이후 버지니아주 북부에 있는 작은 말 농장에서 지냈다. 이강민 기자(river@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