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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2024-06-05 07: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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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당 참패, 그 원인은 경제적 ‘아파르트헤이트’ 
내용

 

입력2024.06.05. 오전 6:00 

 

 

[세계는 지금]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아버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배출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총선 과반 득표에 실패하면서 30년 단독 집권의 막을 내렸다. 

남아공 선거관리위원회(IEC)가 발표한 최종 개표 결과 ANC가 전체 400석 가운데 159석을 차지했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정책) 종식 이후 30년간 7번의 총선에서 ANC가 단독 과반에 실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NC는 1994년 총선에서 62.7%의 득표율로 처음 집권한 이래 줄곧 60%를 넘겨 정권을 지켰다. 직전인 2019년 총선에서는 57.5%를 득표해 전체 400석 중 230석을 확보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득표율 40.2%로 5년 전 총선보다 17%포인트 이상 떨어지며 참패했다.

제1야당인 민주동맹(DA)이 87석으로 2위,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이 세운 신생 정당 움콘토 위시즈웨(MK)가 58석으로 그 뒤를 이었다.

원내 제2야당이었던 경제자유전사(EFF)는 39석에 그치며 4위로 밀려났다.

최악보다 낮은 득표율

 


 

지난 5월 30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 공화국 콰줄루나탈주에 있는말브나티니 마을의 거리에서 야당인 움콘토 위시즈웨(MK) 지지자들이 춤을 추며 환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남아공 선거관리위가 집계한 ANC의 특표율은 40.18%이다.

BBC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는 당이 우려했던 최악의 경우 수인 45%보다 낮은 것"이라고 전했다.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2일(현지시각) 최종 개표 결과 발표 직후 각 정당이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공통점을 찾아 남아공 최초의 연립정부를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좋든 싫든 국민들이 목소리를 냈다"며 "우리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들의 선택과 바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국민)의 투표를 통해 우리의 민주주의가 강하고,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보여 주었다"고 덧붙였다.

남아공은 선관위의 최종 개표 결과 발표 이후 14일 안에 새 의회가 소집되고 여기서 대통령이 선출된다.

연정 구성도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제이콥 주마 전 대통령이 이끄는 움콘토 위시즈웨(MK)의 관계자는 라마포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주마 전 대통령은 각종 부패 혐의로 2018년 당시 대통령직과 ANC에서 축출됐다. 이를 주도한 사람이 당시 부통령이었던 라마포사 현 대통령이다.

2013~2016년 남아공 주재 미국 대사였던 패트릭 가스파드는 BBC와 인터뷰에서 두 정치인을 "숙적(sworn enemies)"이라고 표현했다.

주마 전 대통령은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며 재선거를 요구하고 선관위가 최종 결과를 발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만델라당 외면한 흑인 유권자들

 

외신들은 ANC의 참패를 텃밭이었던 흑인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ANC가 지난 6번의 총선에서 60% 안팎의 높은 득표율로 집권할 수 있었던은 '만델라'였다. 

ANC는 흑인에게 참정권이 처음 부여된 1994년 총선에서 62.7%를 득표해 집권에 성공했고 당시 ANC 의장이던 만델라는 그해 5월 10일 첫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대통령이 된 그는 임기 5년간 아파르트헤이트를 없애고 화해와 포용의 정치를 펼쳤다.

인종 화합에 따른 정치·사회적 안정과 식민지 시대부터 갖춰진 경제·산업 기반, 풍부한 자원을 발판 삼아 남아공은 2000년대 초반까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만델라의 뒤를 이은 ANC 후계자들의 부패와 실정으로 경제난과 사회 불안이 가중되며 ANC의 지지율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만델라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1999년 66.4%로 오른 ANC의 총선 득표율은 2004년 69.7%로 정점을 찍은 뒤 상승세가 꺾였다. 

2009년에는 65.9%를 기록했다. 2014년 총선에서는 62.2%를 득표했고 직전 2019년 총선에서는 57.5%의 득표율로 처음으로 60% 아래로 내려갔다.

지지율은 하락세를 이어갔으나 과반 득표를 유지한 것은 그나마 만델라의 후광과 향수가 조금 더 남은 덕분으로 볼 수 있다.

지지 기반인 흑인 민심을 지켜야 할 ANC가 흑인 빈곤 심화를 방치한 것이 민심 이탈을 부추겼다고 외신들이 분석했다. 

야당인 경제자유전사(EFF)는 이번 총선에서 공약으로 백인 소유 토지 강제 수용을 내걸었다. 흑인은 남아공 인구의 80%를 차지하지만, 흑인이 보유한 토지는 7%에 불과하다.

 

 

무능한 대통령과 집권여당

 

외신들은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물·전력 부족, 높은 실업률, 빈부 격차, 만연한 범죄와 부정부패 등 경제·사회 현안을 해결하지 못한 탓에 ANC가 외면당했다고 지적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실업률은 33%에 이른다. 

남아공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실업자는 820만명으로 전 분기보다 33만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청년층 실업자 수는 23만6천명이 늘어 490만명에 달했고, 취업자 수는 7천명 감소한 590만명으로 집계됐다.

남아공은 심각한 전력난을 겪고 있다. 

남아공 전력공급의 74%를 차지하는 석탄화력발전소의 잦은 고장으로 10시간 이상 정전될 때도 있다. 일본 TBS 방송은 "남아공에서 지난 1년간 정전 발생 일수가 약 300일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전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로 6천메가와트(MW)의 전력이 필요하지만 올해 개선되지는 않을 것으로 외신은 전망하고 있다. 앞으로 5년 안에 전력 부족을 해소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남아공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더반에서 차로 불과 20분 거리에 있는 트레낭스 공원 등 도내 일부 지역은 10개월째 수돗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유조차들이 물을 나르지만 그나마 제때에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주마 전 대통령을 부패 혐의로 축출하면서 국가기관의 부패를 뿌리뽑겠다고 다짐했으나 자신 또한 부패 의혹을 받았다.

야권에서는 부패 의혹이 있는 라마포사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2022년 림포포주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 현금다발로 보관하던 400만달러(약 52억원)를 강도에게 빼앗길 뻔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정국이 들끓었다. 

일명 '팜 게이트(farm gate)'로 불린 이 사건으로 그는 한 차례 탄핵 위기를 겪었다. 독립조사위원회는 납치, 뇌물, 돈세탁, '범죄 은폐' 혐의 등으로 라마포사 대통령을 경찰에 형사 고발했다. 

그는 의혹을 부인했지만, 대통령의 실정법 위반 가능성을 제기해 의회에서 탄핵 절차 개시 표결까지 진행됐다. 그가 속한 ANC가 의회 과반 의석을 차지고 있는 덕분에 탄핵안은 부결됐지만, 정치권 안팎에서 그에 대한 사임요구는 거셌다.

 

 

경제적 아파르트헤이트

 

 

남아공의 수도 케이프타운의 흑인과 유색인종(혼혈인종)은 여전히 흑인구역(township)에 갇혀 산다.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은 대체로 도시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그들은 이사할 자유가 있지만 도심의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요구하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 ANC의 주택정책은 차별을 더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BBC는 남아공의 수도 케이프타운의 빈민가를 취재해 선거 전날 보도했다.

이 지역의 주민 자멜라의 주거지는 한때 영안실이었다. 또 다른 주민 판딜라의 방은 화장실이었다. 베빌라는 주민의 방은 그가 당뇨약을 받으러 왔던 의사의 진료실이었다.

다른 세입자인 파딜라 피터슨은 그녀가 어떻게 병원 화장실을 가정으로 꾸몄는지 보여줬다. 그는 화장실 칸막이를 부엌으로, 세면대를 침실로 바꿨다면서 "나는 1년 동안 10번 정도 쫓겨났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철거된 병원에 앉아 정부가 싼 주택을 공급하지 않는 데 대해 항의하고 있다.

케이프타운시 당국은 이 부지를 재개발해 주택을 짓기로 했지만 현재 세입자들은 불법 점유자들로 개발이 시작되기 전에 떠나야 한다.

이들은 ANC가 30년 전에 자유헌장(Freedom Charter)을 발표한 뒤 정권을 잡았을 때 안전하고 편안한 집을 약속받았던 사람들이다.

시 당국은 300만 가구를 건축했고 무료 혹은 아주 낮은 가격으로 소유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곳은 도시 중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심과의 극심한 차별을 극복하지 못했다.

도시정책연구원인 닉 버들렌더는 "케이프타운보다 차별이 심한 곳은 아마 지구상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케이프타운의 도심에는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이후에도 단 한 채의 저렴한 주택도 건설되지 않았다"며 "도심의 땅에 집을 마련해 주는 대신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느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넬슨 만델라의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은 모든 사람들에게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 BBC는 그러나 남아공 국민들은 30년 넘게 '경제적인 아파르트헤이트'와 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아파르트헤이트 세대들은 최악의 체제를 견뎌냈다.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행복감과 경제적 성장을 경험했지만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들은 쇠퇴와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야당에 투표했다는 카투 마티바는 뉴욕타임스에 "세계가 남아공의 업적을 평가하고 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실업률, 전기와 물 부족, 만연한 범죄에 직면해 있다. 아마도 그들은 아파르트헤이트와 싸우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경제를 위한 계획은 아니었다" 라고 말했다.

 

 

유영혁 기자 press@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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