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3.05.08. 오전 8:31 수정2023.05.08. 오전 8:34
상사 B씨, "농담일 뿐 성적인 언동 아냐"
재판부, "대화가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지 않아⋯"
사진=연합뉴스
회사 상사가 신입사원에게 나이 많은 다른 직원과 사귀어 보라는 식으로 몰고 가면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농담이었더라도 직장 내 상하 관계 속에서 상대가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는 점이 인정된다면 위자료를 줘야 한다는 판결입니다.
오늘(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8-2부(이원중 김양훈 윤웅기 부장판사)는 국내 한 대기업 여직원 A씨가 상사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한 1심을 유지했습니다.
2020년 입사한 신입사원 A씨는 이듬해 옆 부서장인 B씨 등 다른 상사 3명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B씨는 근속연수 25년인 간부로, A씨와는 초면이었습니다.
한 참석자가 A씨에게 "어디에 사느냐"라고 묻자, A씨는 자신이 사는 동네 근처의 역을 말했습니다.
이에 B씨는 당시 자리에 없었던 다른 부서 직원 C씨를 언급하며 "C씨도 거기에 사는데. 둘이 잘 맞겠네"라고 말했습니다. C씨는 A씨보다 20세 가량 많은 미혼 남성이었습니다.
또 "치킨 좋아하느냐"라는 B씨의 질문에 A씨가 "좋아한다"라고 말하자, B씨는 "C씨도 치킨 좋아하는데 둘이 잘 맞겠다"라고 답했습니다. 이어 A씨가 "저 이제 치킨 안 좋아하는 거 같아요"라며 선을 그었지만, B씨는 "그 친구 돈 많은데, 그래도 안 돼?"라며 멈추지 않고 C씨를 언급했습니다.
해당 사건은 이후 해당 기업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며 공론화 됐습니다. 사측은 인사 조치를 통해 사건 당사자들을 분리하고 B씨에게 견책 3일 징계처분을 내렸습니다. 이후 A씨는 이 사건을 통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휴직을 하게 됐다며 손해배상소송을 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처럼 B씨의 발언이 성희롱이라고 판단하며 정신적 고통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A씨가 거부 의사를 완곡히 표현했음에도 B씨는 돈 많은 남성은 나이·성격·환경·외모 등에 관계 없이 젊은 여성과 이성 교제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본 것입니다.
재판부는 "대화가 완전히 대등한 관계에서 이뤄졌으리라 보기 어렵고 다른 사원들도 같이 있었던 자리라는 상황을 종합하면 남성인 피고의 발언은 성적인 언동"이라며 "여성인 원고가 성적 굴욕감을 느꼈겠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라고 판시했습니다.
B씨는 "노총각인 남성 동료에 관한 농담일 뿐 음란한 농담과 같은 성적인 언동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억울함을 표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재판부는 "성희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행위자에게 반드시 성적 동기나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남녀고용평등법 시행규칙상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도 성희롱 판단 기준 예시로 규정돼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승지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leesjee20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