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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2024-07-15 16: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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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러시아에 ‘양다리 전략’ 펴는 인도-주간동아
내용

 

입력2024.07.15. 오후 2:29

 

러시아와 에너지 동맹 맺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 중국 견제 위해 미국과도 협력

인도 남동부의 타밀나두주는 제조업 중심지다. 주도 첸나이는 ‘인도의 디트로이트’로 불릴 정도로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밀집해 있으며 현대, 닛산, 르노, BMW, 다임러CV 등이 이곳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휴대폰·전기차 산업의 대표주자들이 첸나이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애플 최대 협력사인 대만 폭스콘이 아이폰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BMW도 인도 타타 테크놀로지스와 자동차 소프트웨어 및 IT 개발 허브를 구축하고 있다. 타밀나두주와 인접한 카르나타카주는 반도체 등 IT와 첨단 전자 및 항공우주 산업이 발달했다. 주도인 벵갈루루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린다.
 

 

모디 총리, 3연임 직후 모스크바 해외 첫 방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7월 9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에 위치한 대통령 관저 노보-오카료보에서 악수하고 있다. [크렘린궁 제공]

 

인도는 세계 3위의 전력 생산 대국으로 석탄 화력발전 의존도가 높다. 전국 135개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필요 전기의 57.9%를 생산하고 있으며 비화석 연료(풍력, 수력, 태양광, 원자력)가 42.1%를 담당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정전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도 정부는 올여름 섭씨 40~5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으로 전력난이 발생해 전력을 제한 공급하기도 했다.

인도는 제조업과 첨단산업의 메카인 타밀나두와 카르나타카주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고 러시아와 협력해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나섰다. 인도 정부는 타밀나두주 첸나이에서 650㎞ 떨어진 쿠단쿨람 지역에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 로사톰과 원전을 건설하고 있다. 로사톰은 쿠단쿨담 원전 단지에 1000㎿(메가와트) 규모의 경수로 원자로 6기를 운영할 계획이다. 1호와 2호는 각각 2014년과 2016년부터 전력을 공급하고 있으며, 3호와 4호는 2027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12월 로사톰과 5․6호 원자로 건설 협정을 체결했다. 현재 인도에서는 24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며 발전용량은 8.1GW(기가가와트)에 달한다. 인도 정부는 2032년까지 원전 발전용량을 지금의 3배 정도인 22.4GW로 늘일 계획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7월 8~9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국방, 무역, 투자에너지, 과학, 교육, 인적 교류 등에 대해 광범위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모디 총리가 3연임에 성공한 이후 첫 해외 방문이 모스크바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인도 총리는 총리에 취임하면 전통적으로 주변국인 네팔이나 방글라데시, 스라랑카 등을 방문하는데, 예상과 달리 러시아를 찾은 것이다. 모디 총리는 2019년 동방경제포럼(EEF) 참석차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은 이후 5년 만에 러시아를 방문했으며, 모스크바를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때는 2015년이었다.

모디 총리는 와힐랄 네루 초대 총리처럼 3연임에 성공했지만, 지난 총선 대비 지지율이 폭락해 ‘상처뿐인 승리’를 거뒀다. 모디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여당인 인도국민당(BJP)은 전체 543석인 로크 사바(인도 하원)에서 240석을 얻는 데 그치며 의석 단독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힌두 민족주의 정치의 본산으로 여겨졌던 우타르프라데시주에서도 의석 과반을 잃었다.

인도 국민당이 저조한 성적을 거둔 이유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뤄냈지만 고물가와 심각한 빈부격차, 실업률 급등 등 민생을 외면했다는 국민 불만 때문이었다. 모디 총리로선 집권 3기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제조업 육성을 통해 고성장 정책을 계속 추진하려면 고물가 등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디 총리는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 등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로부터 값싼 에너지를 수입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값싼 러시아 원유 수입해 이득

 

모디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 외곽에 위치한 대통령 관저 노보-오가료보에서 양국의 무역 및 에너지·경제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두 정상은 현재 650억 달러(약 89조8600억 원) 규모인 교역을 2030년까지 1000억 달러(약 138조2500억 원)규모로 늘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가스 협력을 강화하고, 석유의 장기 공급을 위한 방안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서방 제재로 에너지 수출길이 막히자 인도에 석유를 저가로 공급하며 돌파구를 찾아왔다.

세계 3위 원유 소비국인 인도는 러시아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다. 서방 제재 후 지난 23개월 동안 인도가 저렴한 러시아 원유를 수입해 아낀 돈은 무려 130억 달러(약 17조97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인도가 5월 수입한 러시아산 원유는 하루 평균 210만 배럴에 달했는데, 이는 전월 대피 14.7% 증가한 양이다. 인도의 수입 원유 전체에서 러시아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41%나 된다. 러시아는 인도에 원유를 할인 가격으로 수출하고 있다.

러시아는 인도에 적극적으로 원전 수출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모디 총리와 함께 러시아 발전상을 보여주는 러시아 박람회장의 원자력 기술 전시관을 둘러봤다. 두 정상은 이 자리에서 양국의 원전 분야 협력도 논의했다. 두 정상이 2시간 30분간 정상회담을 가진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협력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이 담겼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은 “러시아가 인도에 6개의 고·저출력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양국은 우라늄 공급 협력도 추진할 전망이다. 인도는 북부 자르칸드주 지역에서 채굴되는 우라늄으로 국내 수요를 충당하고 있는데, 해당 지역의 매장량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어 새 공급처가 필요한 상황이다. 게다가 우라늄 가격은 최근 3배 이상 올라 비교적 저렴한 러시아산 우라늄을 안정적으로 수입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러시아에는 전 세계 우라늄의 50%가 매장돼있다. 전 세계 우라늄 공급량 가운데 20%가 러시아산이기도 하다. 인도는 러시아로부터 핵잠수함, 핵추진 항공모함 등 전용이 가능한 부유식 원전을 구입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부유식 원전은 대형 선박 위에 소형 원자로를 설치한 덕분에 이동하면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인도와 러시아가 이처럼 일종의 ‘에너지 동맹’을 구축한다면 양국 모두에 ‘윈·윈(win-win)이 될 수 있다. 인도는 값싼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의 제재를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첨단 무기 구매 나서

 

모디 총리의 모스크바 방문이 주목되는 다른 이유는 러시아와 중국의 밀착 관계를 견제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모디 총리는 7월 3~4일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하는 대신 외무장관을 보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적으로 고립되면서 중국이 사실상 SCO를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 의도적으로 밀월 관계를 강화하면서 SCO를 미국 등 서방의 군사와 경제 블록에 대응하는 협력체로 만들어가려는 의지를 보여 왔다. 인도 언론들은 모디 총리가 중국의 이 같은 의도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 왔기 때문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같은 무대에 서고 싶지 않아 SCO 정상 회의에 불참했다고 분석했다. 인도는 러시아가 잠재적 적국인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에 대해 못마땅한 입장이다. 스와스티 라오 인도 국방연구소 연구원은 “러시아와 중국 간의 전략적 연대가 깊어지는 것은 뉴델리에게 불편한 일”이라며 “이는 마치 가장 친한 친구가 적과 가까워지는 것과 같다”라고 분석했다.

인도는 그동안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첨단 무기를 대거 구매해왔다. T-90 탱크를 수입했고 Su-30MKI 전투기를 라이선스 생산하고 있으며 첨단 방공 미사일 체계인 S-400도 도입했다. 인도는 5세대 전투기인 Su-57을 러시아와 공동생산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 맥락에서 볼 때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강화될수록 인도는 러시아로부터 첨단 무기를 수입할 수 없게 된다. 모디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의 밀월 관계를 강화해 양국의 전략적 협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한다고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모디 총리가 미국과도 안보·경제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인도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출범시킨 일본, 호주 등이 참여한 인도·태평양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인도는 구글 등 미국 첨단 IT기업들의 투자 역시 적극 유치하고 있다. 말 그대로 ‘양다리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인도는 앞으로도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전통적인 비동맹주의 외교정책을 유지하면서 양쪽에서 국익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아일보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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