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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2024-09-18 18: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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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를 이용한 폭탄테러 레바논, 배후는 이스라엘?
내용

 

입력2024.09.18. 오후 5:53

 

 

레바논 한복판 '삐삐 테러'
헤즈볼라 사용 무선 호출기
도심서 수백대 동시에 폭발
병원·마트·길가 아수라장
9명 사망·2800명 부상 당해
이스라엘 모사드 배후 지목
헤즈볼라 "처벌 받게 될 것"
가자지구 분쟁 전면전 우려

 


17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무선호출기 수백 대가 폭발해 2800여 명이 부상을 당하자 시내에 위치한 아메리칸대 병원 일대에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몰려들며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 시내에 긴급 투입된 군인들이 병원 인근(왼쪽)에서 교통을 통제하는 가운데 인파 속 한 시민(오른쪽)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피를 흘리는 폭발 피해자의 영상을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삐…삐…펑!"

지난 17일 오후 3시 30분(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일대에서 무장단체 헤즈볼라 대원들이 사용하는 호출기가 이 같은 짧은 신호음을 낸 뒤 연달아 폭발했다. 이후 1시간여 동안 베이루트 지역을 중심으로 호출기 수백 대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며 사상자를 키웠다.

마치 첩보·테러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스토리가 현실로 벌어지면서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호출기 수백 대에 폭발물을 설치한 곳으로 이스라엘 첩보 기관이 지목되고 있다.

18일 CNN·로이터 등 외신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과일가게에 있던 한 대원의 허리춤에서 소형 호출기가 갑자기 폭발했고 마트 계산대에 있던 사람은 신호음을 확인하며 호출기를 만지자 곧바로 강한 폭발음과 함께 연기를 내뿜었다. 피해자들은 폭탄 반발력에 2~3m 뒤로 나동그라졌다.

외신에 따르면 호출기 폭발사고는 1시간여에 걸쳐 수백 대에서 발생했다. 일부 호출기는 갑자기 폭발했고 벨소리가 울린 뒤 터지는 사고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호출기를 차고 있던 복부나 둔부에 큰 상처를 입고 병원에 실려갔으며 호출기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한 사람은 손가락과 손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레바논 시민들은 길가나 카페 등에서 폭발 소리와 함께 피해자들이 피를 흘리며 넘어지자 대규모 총격 테러가 일어난 것으로 착각하면서 시내 일대가 마비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동시에 수천 명이 사고를 당하자 베이루트 인근 병원은 혼란에 빠졌다. 이번 사고로 모즈타마 라마니 레바논 주재 이란대사도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그는 가벼운 부상 수준으로 알려졌다.

 


 

헤즈볼라 측은 우군으로 거론되는 이란과 시리아 등의 지도자들에게 헤즈볼라의 메시지를 전송하기 위한 수단으로 호출기를 전달했고 이날 폭발사고에 이들도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현지 의사는 "병원이 아수라장이 됐다"며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과 아이도 크게 다쳤다"고 설명했다. 시내 병원 일대는 피해자를 찾기 위해 몰려든 가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레바논 정부는 군대를 긴급 투입해 교통 통제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젊은 남성들은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살해하겠다는 구호를 연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라스 아비아드 레바논 보건부 장관은 "최소 2800명이 부상을 당했고 200명이 중태에 빠졌다"며 "사망자 중에는 10세 소녀도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상자가 베이루트뿐만 아니라 남부 베카지역 등에서도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까지 사망자는 9명으로 집계됐다.

AP통신은 헤즈볼라 소식통을 인용해 호출기 리튬배터리가 폭발했다고 보도했다. 헤즈볼라 측은 폭발사고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날 헤즈볼라는 성명에서 "이스라엘에 전적인 책임을 묻는다"며 "반드시 정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아드 마카리 레바논 정보장관도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 유엔과 접촉 중이라고 말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모든 시민에게 호출기를 즉시 폐기하라고 요청했다.

이날 사고는 16일 이스라엘 안보 내각이 레바논 접경지역에 있는 이스라엘 북부 주민들의 안전한 귀환을 전쟁 목표에 추가하고 단 하루 만에 벌어졌다. 다만 이스라엘 정부는 폭발사고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통신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이번 사건과 관계돼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2월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위치 추적을 이유로 휴대폰 사용을 금지한 뒤 호출기를 대량으로 수입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측이 폭발물을 미리 심었다는 분석이다.

헤즈볼라가 대만 기업 골드아폴로에서 호출기 약 5000대를 수입했고 유통 과정 중 모사드가 침투해 1~2온스(28.3∼56.6g)의 폭발 물질과 원격 기폭장치까지 설치했다는 주장이다. 다만 호출기가 레바논에 수입된 시점과 구체적인 폭발물 설치 시점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무선호출기는 1990년대 국내에서 '삐삐'로 인기를 끈 제품으로 간단한 문자나 전화번호를 수신할 수 있는 기기다.

미코 히포넨 유로폴 사이버 범죄 고문은 "이 호출기는 폭발을 일으키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개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폭발의 크기와 강도를 보면 배터리만 폭발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사태로 휴전 조짐을 보였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분쟁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에 전면전으로 치달을 위기에 놓였다. 당장 영국항공, 루프트한자, 에어프랑스 등 서방 항공사들은 이스라엘 텔아비브행 항공편을 중단했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분쟁으로 4만여 명이 사망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북부 레바논 헤즈볼라와도 소규모 전투를 벌여왔다. 약 11개월간 헤즈볼라 대원 470여 명과 이스라엘 대원 4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미국은 외교적 해결을 강조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이 사건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며 "우리는 항상 확전을 야기할 수 있는 어떤 형태의 사건이든 우려한다"고 말했다.

매경

진영태 기자(z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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