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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3-06-21 11: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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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어민 죽이는 오염수 방류 철회하라” 30년 차 어부의 외침
내용

 

입력2023.06.20. 오전 6:42   수정2023.06.20. 오전 10:32

 

30년 차 어부 이기삼씨는 최근 본업인 선망어업 선장 일을 제쳐두고 집회에 나서고 있다. 올여름으로 예정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막기 위해서다. 어민과 상인 사이에선 오염수 방류가 현실화하면 경제적 타격이 막심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기삼씨가 6월5일 통영 동호항에 정박해둔 배에 서 있다(왼쪽). 전국어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이씨가 6월12일 서울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어민대회에 참석했다(오른쪽). ©시사IN 신선영

베테랑 선망어업 선장 이기삼씨(52)는 30년 차 어부다. 20대 초부터 바다에 나가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해왔다. 선망어업은 여러 척의 배가 선단을 이뤄 고등어처럼 몰려다니는 물고기를 그물로 포위해 잡아 올린다.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배를 타고 나가 조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통상 해가 지기 전에 출항해 아침 해가 뜰 즈음에야 뭍으로 돌아온다.
 

6월6일 새벽 선망어업을 마친 선단들이 통영 동호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6월5일 오후 4시, 평소라면 출항을 준비하느라 바쁠 시간이지만 이기삼씨는 바다로 향하지 못했다. 일주일 뒤 서울에서 예정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집회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국어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그는 요즘 집회에 함께할 어민들을 모으고, 집회에 참여해 사람들을 설득하느라 분주하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자 이씨의 본업은 자연스레 뒷전이 됐다. 이날도 다른 선단이 고등어와 전갱이를 잡아 올릴 동안 이기삼씨네 선단 3척은 통영 동호항에 밤새 정박해 있었다. 본업을 하지 못하니 손해가 늘어났다. 선장인 이씨가 일을 하지 못하면 선단 전체가 조업을 쉬어야 한다. “매일이 적자다. 그래도 평생 바다에서 밥벌이 해먹고 살았는데 바다를 포기할 순 없는 것 아닌가.”
 

6월6일 통영 동호항 수협 위판장에서 밤사이 잡아 올린 고등어와 전갱이를 선별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6월6일 통영 동호항 수협 위판장에서 밤사이 잡아 올린 고등어와 전갱이를 선별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손해를 감수하며 앞장섰지만, 동료 어민들을 설득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는 비판도 들었다. 집회로 인해 오염수 문제가 연일 보도되면 불안감이 더 커지고, 어민들의 금전적 피해도 심해질 것이라고 여기는 동료가 많았다.

이기삼씨 역시 주변의 우려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정부에 오염수 문제 해결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더 이상 쉬쉬할 수 없을 만큼 이미 오염수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고, 정부가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씨는 “정부와 여당은 일본을 대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오염수를 방류해도 안전하다는 말을 국민 대부분은 믿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6월5일 오후 통영나잠자율공동체 소속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이 통영 도천 위판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어업 종사자들에게 수산물 안전성에 대한 신뢰는 곧 생계와 직결된다. 해녀들의 자율 조직인 통영나잠자율공동체 장안석 위원장(66)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를 생생히 기억한다. 수산물에 대한 불안이 퍼지면서 가격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벌써 당시와 유사한 사태가 반복될 조짐이 보인다. 최근 해녀들이 주로 채취하는 전복, 소라, 해삼 등의 가격이 30%가량 하락했다. 그는 오염수 방류 우려로 불안감이 증폭한 데 따른 결과라 해석한다.

통영에서 활어 도소매 유통을 하는 김필국씨(56)는 오염수 방류가 바다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말을 믿지 않는다.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받을 곳은 일본이기에, ‘제 발등 찍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시 다가올 여름이 걱정되긴 마찬가지다. 2021년 일본 정부가 방류 방침을 밝힌 이후 손님들은 국산 생선에 대해서도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럴 때마다 김씨는 “아직 방류한 것도 아닌데 무슨 걱정이냐”라고 응대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계획대로 방류를 시작한다면 앞으로 손님들을 어떻게 안심시킬지 막막하다. “내가 어떻게 믿는지와 관계없이, 사람들이 불안해하면 우리에게 타격이 크다. 그런데 정부가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것 같아 걱정이다.”
 

6월6일 오전 김필국씨가 통영 중앙시장에 위치한 활어시장에서 손님을 응대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통영 중앙시장에 위치한 활어시장 골목 곳곳에 원산지 표시판이 부착돼 있다. ©시사IN 신선영

6월12일 월요일, 이기삼씨는 다시금 본업을 제쳐두고 서울로 향했다. 이날 정오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어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2000명이 넘는 집회 참가자들 앞에서 이씨는 이렇게 외쳤다. “어민들은 수산물이 팔리지 않는 것은 물론 삶의 터전인 바다가 오염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넘어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 정부는 오염수 해양 투기를 저지하라.”
 

6월12일 서울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어민대회에 어민 약 2000명이 참가했다. ©시사IN 신선영

6월12일 전국어민대회 집회에서 한 어민이 태평양 바다를 살려달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통영/사진 신선영 기자·글 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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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2024-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