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0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 상하이 당서기로 재임했던 장쩌민이 대접한 녹차가 서호용정차(西湖龍井茶)였다. 시진핑 주석이 2014년 11월 중국을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한 차 역시 서호용정차였다. 2016년 G20 정상회담이 항저우에서 열렸을 때 회의, 만찬, 연회 등 공식 석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녹차도 서호용정차였다.
외국 수반을 환대하는 차로 등장하는 서호용정차는 중국 10대 명차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용정차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용정차가 중국 10대 명차 선정에 빠짐없이 선두를 달리는 이유 중 하나는 명품을 명품답게 받쳐주는 전설과 설화가 풍성하게 있다는 점이다. ‘스토리텔링’의 강력한 힘은 차의 세계에서도 적용된다.
서호와 용정은 호수와 우물의 이름으로 모두 물과 관련된 지명이다. 2011년 6월 24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서호는 저장성 성도 항저우 시내에 있는 아름다운 인공호수다. 서호라는 이름은 오(吳)나라를 망하게 한 경국지색 서시(西施)에서 따왔다. 중국 4대 미녀 중 최고로 뽑히는 서시의 본명은 시이광(施夷光). 항저우(杭州) 서촌(西村)에 살아서 ‘서쪽 마을의 시씨’라는 뜻으로 서시라고 불렸다.
서호에 얽힌 전설들
서시는 가난한 나무꾼의 딸로 태어났지만 월(越)나라 구천(句踐)의 책사 범려(范蠡)에 의해 이른바 스파이 후보로 캐스팅됐다. 범려는 3년에 걸쳐 서시에게 가무와 교태를 가르친 후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서시를 밀파했다. 구천이 힘을 키우는 동안 부차는 미인계에 빠져 국력 소모와 정사 태만으로 나라를 잃고 결국 자결했다. 서시의 죽음도 여러 설이 있을 뿐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중국 정부는 서시 스토리를 국가급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서시에 대한 흠모와 연민은 역대 중국 최고 문인들의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당(唐)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와 중국 문학의 최고로 인정받는 북송의 대문장가 소동파(蘇東坡)도 서시와 서호에 대해 예찬했다. 그 여파로 ‘서호’라는 이름의 호수가 없는 도시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서호’가 중국 전역에 생겼다.
서호에 얽힌 또 다른 전설은 천년 묵은 뱀과 가난한 서생과의 사랑을 다룬 백사전이다. 영화로 여러 차례 제작된 스토리인데, ‘백사’ 역할은 당대 중국 최고의 여배우가 맡아왔다. 중국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와 2명의 연출자가 백사전을 소재로 ‘인상서호(印象西湖)’라는 산수실경(山水實景) 대형 수상 가무극을 제작하기도 했다. 2007년 3월 30일부터 매일 저녁 서호의 자연경관을 무대로 활용하는 ‘인상서호’가 공연됐다. 이 수상 가무극은 보는 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한편 용정은 둘레가 16㎞인 서호로 흘러들어오는 물줄기 중 하나로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물맛이 감미롭기로 유명하다. 용정의 탄생에도 신화가 있다. 곤륜산(崑崙山)에 사는 서왕모가 키운 불로장생 복숭아를 신선들에게 대접하는 성대한 잔치가 하늘나라에서 열렸다. 여기서 땅의 신이 실수로 마시던 찻잔을 떨어뜨렸다. 땅의 신이 찻잔을 찾으러 인간세계로 내려왔다가 자신의 찻잔을 용홍(龍泓)마을에서 찾아냈다.
그런데 자신의 찻잔을 대나무 숲에서 홀로 사는 노파가 고춧가루를 빻는 절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매운 고추 냄새에 땅의 신은 재채기를 연거푸 했다. 그 바람에 찻잔이 땅속 깊이 들어가 버려 빈손으로 돌아갔다. 찻잔이 땅에 파묻힌 자리에 먼 훗날 샘물이 나왔는데 물맛이 기가 막혔다. 서호 서쪽 옹가산(翁家山) 기슭에 있는 맑은 샘에서 나오는 물맛이 소문이 나며 용정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서호용정차는 서호를 겹겹이 둘러싼 산과 호수 주변이 차의 주생산지여서 서호용정차로 부른다. 물 좋은 용정 옆에 용정사란 절이 생기고 스님이 차를 재배하자 그 맛과 향이 소문나면서 차를 만들기 위한 마을이 1500년 전에 형성됐다. 용정차는 이른 봄 청명 전에 따는 명전(明前)을 최고로 분류한다. 최고등급 용정차 100g을 만들려면 1만8000개의 어린 눈아(嫩芽)와 눈엽(嫩葉)이 필요하다. 가격은 최상품이 100g에 1000만원을 상회한다.
송(宋)나라 시대부터 시작한 용정차의 재배기술과 제다기술은 원(元)나라가 들어서며 널리 알려졌다. 청(淸)나라 건륭(乾隆)황제가 여섯 차례나 강남 순행을 하며 용정을 방문해 시음과 찻잎 채취까지 하게 되면서 용정차는 황제의 차로 등극해 중국 최고의 명차로 자리매김했다. 황태후의 병을 낫게 했다는 18그루의 용정차나무는 황실 근위대가 지키며 매년 황제에게만 진상했다.
최초 유인 우주선에 싣고 간 차
지금도 예우받는 이 나무들은 현대에 와서는 장쩌민, 시진핑과 같은 국가 영도자가 즐겨 방문하는 대상이 됐다. 1962년 마오쩌둥 주석은 이곳에 내려와 기념 식수도 하고 직접 찻잎을 따기도 했다. 지금도 그 차나무를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 2003년 10월 15일 발사된 중국 최초의 유인 우주선 선저우(神舟) 5호에 용정차 종자를 싣고가 우주 환경에서의 유전자 변이 실험도 했다.
2011년 6월 24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름다운 인공호수 서호는 저장성(浙江省) 성도 항저우에 있다. 인구 900만명의 도시에 전통찻집만 7000곳이 넘는 항저우는 진품 용정차를 구하려는 중국인과 전 세계 관광객이 몰리는 중국 10대 미향(美鄕)이다. 13세기 항저우에 온 마르코 폴로는 ‘지구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도시’라고 감탄했다.
항저우는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가 선정한 2007년 중국 최고의 관광도시로 뽑히기도 했다. 한국 영화감독과 결혼한 배우 탕웨이의 고향이기도 한 항저우는 ‘미인 생산기지’로 불릴 만큼 미녀 천국이다.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한 항저우의 번영과 명성을 가져온 일등공신은 7세기 초에 완성된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다. 베이징에서 출발해 4개 성을 지나 항저우까지 이어지는 1794㎞의 경항대운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운하다. 604년 수(隋)나라 양제(煬帝)가 8년에 걸쳐 5개 강의 수로를 연결한 대역사(大役事)는 강남의 풍부한 물자와 병력을 북방으로 신속하게 이동시키는 유용한 통로가 됐다. 지류를 포함한 대운하의 전체 길이는 2700㎞ 정도였다. 고구려 침략을 위한 병참선(兵站線)으로서 주요한 기능을 하기도 한 대운하를 따라 차와 차 문화도 북방지역에 전해졌다. 세 번이나 실패한 고구려 침공의 후폭풍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반란군에게 수양제는 비참한 최후를 맞고 수나라는 중원 제패 38년 만에 멸망했다.
당나라 때부터 더욱 번성한 항저우는 수로를 따라 청나라 때 세워진 가옥과 새로 형성된 신시가지가 조화롭다. 운하 옆에 조성된 다뚜루(大兜路) 역사문화 거리에는 항저우의 미식가와 관광객이 어우러져 매일 밤 불야성을 이룬다. 해질 무렵 유람선을 타고 롱징차를 마시면서 항저우의 야경을 감상하는 재미는 화려한 홍콩과
상하이의 야경과 차별화되는 항저우 탐방의 백미(白眉)다.
주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