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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소식2024-03-05 08: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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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중국 겨눈 美 바이오안보법이 노리는 3가지
글쓴이 뉴스팀 글잠금 0
제목 중국 겨눈 美 바이오안보법이 노리는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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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4.03.05. 오전 4:01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에 위치한 BGI 실험실의 모습. photo 뉴시스

지난 1월 25일 미국 의회에서 바이오안보법(BIOSECURE ACT) 법안이 발의됐다. '바이오산업'과 '안보'라는 이질적 단어가 조합된 법안이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당을 가리지 않고 공동발의했다는 점, 상원과 하원에서 동시에 발의된 점을 고려하면 해당 법안의 중요성은 절대 작지 않다. 더군다나 해당 법안이 겨냥하는 게 중국 바이오산업이라는 걸 고려하면 우리나라 제약·바이오산업에 미칠 영향을 짚어보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미국에서 추진 중인 바이오안보법이 정확히 무엇이고, 해당 법안이 나온 배경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살펴보자.

명분은 '유전자 데이터' 유출

이번 바이오안보법이 콕 집어서 겨냥한 중국 기업은 두 곳이다. 중국의 유전자 데이터 연구기업인 BGI와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업체인 우시앱텍(Wuxi Apptec)이다. 둘 다 국내에선 그리 친숙하지 않은 기업이지만 BGI는 임산부의 다운증후군 산전 검사에 사용되는 니프티검사(NIPT)를 개발해 전 세계에 공급 중인 기업이고, 우시앱텍은 동물실험과 세포실험 등의 비임상시험 분야에서는 세계 1위 수준의 규모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이 정도로 영향력 있는 기업들을 갑자기 규제하는 명분이 뭘까.

미국 국방부 등의 안보 기관이 내놓은 이유는 중국이 추진 중인 군민융합(軍民融合) 정책이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인력과 시설, 자본, 법률 등을 총동원해 군사기술 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대표적인 게 데이터 관련 법률들이다.

중국은 데이터 주권(主權)이란 개념을 바탕으로 '데이터안전법(數据安全法)'을 비롯한 관련 법률 패키지가 완성된 상태라 중국 영토 내에 서버를 둔 기업들의 경우 중국 정부가 요구하면 관련 데이터를 제출하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중국 기업이 확보한 각종 기술과 데이터가 중국 정부를 경유해 중국 인민해방군 연구시설 등으로 쉽게 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살펴보면 BGI는 유전자 데이터 측면에서 위험 기업이다. 전 세계 산모들을 대상으로 다운증후군 검사를 수행하며 산모들은 물론 태아 유전정보를 축적하고 있다는 의혹이 계속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도 아닌 동물실험이나 세포실험을 수행하는 우시앱텍을 규제하는 이유는 뭘까. 실은 해당 법률이 노리는 게 우시앱텍이 아닌, 우시앱텍의 자회사인 우시바이오로직스(Wuxi biologics)라는 추측이 나온다. 바이오안보를 빌미로 중국의 바이오 경쟁력을 약화시키겠단 것이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은 이미 역사가 깊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대중(對中) 무역분쟁도 패권 경쟁의 일환이다. 당시 중국산 제품에 대한 대규모 관세 부과 조치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처음 시작됐다 보니, 초기에는 일시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기행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조치는 바이든 행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후에도 철회되지 않았다. 중국과의 무역분쟁이 트럼프 정부만의 일탈이 아닌, 미국 지도층의 일관된 입장이 반영된 행보였단 것이다. 소위 '무역안보론'이 국가 전략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비슷한 방식의 움직임은 기술 분야에서도 있었다. 첫 타자는 IT 분야였다. 2019년에 중국의 대표적 IT 기업인 화웨이에 대해 대규모의 거래 제한을 거는 초유의 조치가 이루어졌고, 결과적으로 전 세계 10% 수준의 점유율을 유지하던 화웨이 스마트폰은 현재 3%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화웨이가 기업과 정부 등을 대상으로 공급하던 통신장비 역시 서방 진영에서 실질적으로 퇴출된 건 덤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2022년부턴 중국으로의 반도체 수출 전반을 통제하는 초강수까지 뒀다. 최근의 AI 열풍까지 가지 않더라도, 부가가치가 극도로 높은 IT 산업에서 중국 기업들의 예봉(銳鋒)을 꺾겠다는 의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에 발의된 바이오안보법은 중국과의 기술패권 경쟁의 다음 타자가 바이오산업이라는 걸 선언하는 것에 가깝다. 표면적인 이유야 유전자 데이터 유출 위험이라지만, 화웨이 사례에서도 그랬듯 적당한 명분일 뿐이다. 실질적으로 이번 바이오안보법을 계기로 미국이 노리는 전략적 목표는 대략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미·중 패권경쟁의 다음 영역은 바이오

첫 번째는 중국 바이오 업체들의 미국 시장 공략을 좌절시키는 것이다. 바이오안보법에 따르면 BGI나 우시앱텍과 관련된 업체들은 미국 행정부나 공공기관 등과 계약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별것 아닌 조치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고가의 바이오의약품이 미국의 공공 의료보험인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를 통해 공급될 수 없다는 건 꽤 큰 타격이다. 6300억달러(약 840조원) 수준의 미국 의약품 시장에서 공공의료보험이 차지하는 약제비가 최소 30% 정도는 되기 때문이다. 미국 의약품 시장이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걸 고려하면 타격이 크다.

두 번째는 세계 3대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업체인 우시바이오로직스의 영향력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바이오의약품 위탁시장의 1위는 스위스의 론자(Lonza)이고, 2~3위 자리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인 기업이 중국의 우시바이오로직스와 국내의 삼성 바이오로직스다. 중국의 바이오 굴기를 막아내면 동맹권이라 할 수 있는 유럽 혹은 한국의 제약사들이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몇 년 전부터 미국 정재계가 잠재적 적대국에서 동맹 혹은 준(準)동맹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시키는 소위 얼라이쇼어링(Allyshoring) 정책에도 부합하는 행동이다.

세 번째는 중국 바이오업체의 신약개발 역량 약화다. 국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대적으로 소품종 대량위탁생산 전략을 취하고 있다면, 중국의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상대적으로 다품종 소량생산 쪽의 전략을 택하고 있다. 신약 개발을 위한 소규모 생산에 적합해 동물실험 등의 비임상시험 대행업체인 모회사 우시앱텍과의 연계성도 좋다. 이들 두 기업을 옥죄면 단순히 세계 선두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게 아닌 중국의 바이오의약품 신약 개발 역량 자체를 둔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반도체 수출규제와 유사하게 산업 토대를 무너트리는 비책이다.

이런 미국의 조직적 움직임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에는 희소식이다. 바이오 분야에서 중국과의 경쟁이 완화되는 건 물론 그 반사이익을 우리 기업들이 고스란히 노릴 수도 있어서다. 그렇지만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사태 때 우리나라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이 받았던 타격을 고려하면, 자칫 우리도 미국의 첨단산업 규제 앞에 놓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자국 이익 앞에서는 동맹도 가차 없다던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박한슬 약사·‘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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