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4.01.15. 오전 3:06 수정2024.01.15. 오전 10:02
추가로 대출해줄 ‘수출입은행법’ 표류로 무산 위기 폴란드에 대한 최대 30조원 규모의 무기 2차 수출 계약이 국회의 입법 지연으로 대폭 축소되거나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14일 국회에 따르면, 폴란드에 한국산 무기 구매 대금을 추가로 대출해줄 수 있게 하는 내용의 한국수출입은행(수은)법 개정안은 지난 9일 종료된 임시국회에서 한 차례도 심사되지 못했다. 15일 시작되는 새 임시국회에서도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4월로 다가온 총선으로 인해 21대 국회의원 임기 내 처리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폴란드 정부는 2022년 7월 한국항공우주산업의 FA-50 전투기 48대, 한화디펜스(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672문, 현대로템의 K2 전차 980대를 도입하기로 하고 한국 측과 기본 계약을 체결했다. 이 가운데 K9 자주포와 K2 전차 물량은 계약을 1차와 2차로 나눠 진행하기로 했다. 폴란드 정부는 기본 계약 한 달 만인 2022년 8월에 17조원어치를 먼저 사들이는 내용의 1차 계약을 체결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당시 한국은 폴란드에 한국산 무기를 살 돈을 빌려주고, 폴란드는 이 돈으로 무기를 사고 향후 돈을 갚아 나가기로 합의했었다. 국가 간 대규모 무기 거래에서 흔히 쓰이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1차 계약에는 수은과 무역보험공사가 6조원씩 총 12조원을 폴란드에 빌려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래픽=박상훈 문제는 폴란드가 K9·K2 최대 30조원어치를 더 사들이는 2차 계약을 한국 측과 맺으려 할 때 발생했다. 수은과 무역보험공사의 추가 금융 지원이 어려워진 것이다. 현행 수은법에 따르면, 수은의 자본금은 15조원으로 제한돼 있고, 수은법 시행령에 따라 수은은 동일 차주에게 자기자본의 40%까지만 대출해줄 수 있다. 현재 수은의 자기자본은 자본금 15조원을 포함해 18조4000억원 정도고, 그 40%인 7조3600억원 가운데 6조원은 이미 1차 계약에 썼다. 2차 계약에선 1조3600억원 정도만 폴란드에 빌려줄 수 있다. 국회에는 수은의 자본금 한도를 늘려서 대출 한도를 늘려주는 법안들이 여러 건 발의돼 있다. 국민의힘 윤영석, 더불어민주당 정성호·양기대 의원이 각각 발의한 수은법 개정안은 수은 자본금 한도를 현행 15조원에서 25조~35조원으로 늘리는 내용이다. 이러면 폴란드에 4조~8조원을 더 대출해줄 수 있게 돼 2차 계약 진행이 가능해진다. 민주당 김병욱 의원도 수은의 대출을 받는 것이 기업이 아니라 특정 국가나 정부일 경우에는 자기자본의 40%를 넘겨서 대출을 해줄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내놨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문위원도 이 법안들에 대해 “방위산업의 경우 대규모·장기 자금이 필요한 산업 특성상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고, 향후 사우디 네옴시티 건설 사업,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사업 등 세계 각지의 초대형 인프라 사업 발주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런 사업에 한국 기업이 도전할 수 있도록 수은의 자본금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수은의 자본금 한도는 이미 7차례나 확대된 전례가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중 어느 한쪽도 수은법 개정에 대해 반대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수은법 개정안은 정성호 의원안이 2021년 한 차례 심의된 것을 제외하고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이 법안 처리 지연으로 폴란드 무기 계약에 문제가 생겼을 때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고 했다. 김경필 기자 pil@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