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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4-03-06 0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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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고소장 대신 진정서 내라는 경찰… “책임 회피 꼼수” 비판도
내용

입력2024.03.06. 오전 12:05

 

행정 절차 줄고 책임 회피 쉬워
지난해 범죄수사규칙 개정 불구
진정서 유도·고소장 반려 잦아


50대 남성 A씨는 지난 1월 ‘틱톡샵’ 판매 대행이라는 온라인 게시글을 보고 부업을 시작했다. 게시글 안내에 따라 메신저를 설치하고 약 10회에 걸쳐 3100만원을 투자처에 입금했으나 계좌주가 잠적하면서 투자금을 모두 잃었다.

A씨는 지난달 28일 피해 증명 자료를 갖고 화성동탄경찰서에 방문했으나 담당 경찰관은 고소 대신 진정을 하라며 진정서류를 내밀었다. 그는 5일 “통장 입출금 내역과 사기꾼 틱톡 계정, 게시글까지 인쇄해서 가져갔는데도 고소를 못 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일부 사건 피해자에 대해 고소장 대신 진정서 접수를 유도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진정 사건은 고소 사건보다 준수해야 할 절차가 줄어들고 책임 회피도 쉽기 때문에 경찰이 꼼수를 부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은 고소장 반려 관련 민원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이미 지난해 11월 1일 범죄수사규칙을 개정했다. 경찰이 관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고소·고발장을 반려 없이 접수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하지만 아직 현장에서는 관련 문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30대 남성 B씨는 취업준비생이던 지난해 10월 SNS에서 해외 직구대행 관련 홍보글을 접했다. 구매 대행금으로 약 512만원을 입금했지만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했고, 해당 구매대행 사이트는 피싱 사이트로 확인됐다.

B씨는 같은 해 11월 인천미추홀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러 갔지만 반려당했다.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경찰서를 찾았는데 너무 황당했다”고 했다. B씨는 이후 대출을 받아 변호사를 선임했고, 그제야 고소장을 접수할 수 있었다. A씨와 B씨 모두 사기 등으로 피해를 봐 정신적·물질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변호사 선임에 대한 부담까지 더해졌다고 말했다.

경찰이 진정 사건 접수를 선호하는 이유는 행정상 편의 때문이란 해석이 많다. 경찰수사규칙 제24조에 따르면 경찰은 고소·고발 사건의 경우 3개월 이내에 수사를 마쳐야 한다. 고소장이 접수되면 사건은 바로 수사로 진행된다. 피고소인 등 사건 당사자 조사를 포함한 여러 절차가 의무적으로 이행돼야 한다.

반면 진정 사건은 수사가 아닌 ‘내사’로 진행되기 때문에 불입건 결정 시에도 피진정인에 대한 조사를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된다. 진정인이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내사 종결 처리도 가능하다. 기한 제한도 따로 없다. 결국 경찰이 실적으로 올리기 애매한 소형 사건의 경우 진정 접수만 받은 뒤 수사는 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사건이 내사로 이뤄지면 피해자가 초기 단계부터 사건의 혐의를 명확히 입증해야 할 책임이 커진다고 설명한다. 김태룡 변호사는 “진정서 접수로 유도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은 변호사 선임 없이는 고소장 접수가 힘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앞서 2021년 검경수사권 조정 직후부터 경찰이 실적이 될 만한 건에 대해서만 고소장을 받는 이른바 ‘체리피킹’ 수사 논란이 벌어졌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당시 “고소인의 명확한 동의 없이 고소 접수가 반려되는 등 고소인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경연 기자(contest@kmib.co.kr)

편집인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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