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단체연합회 성명서 발표
의·정에 조속한 의료 정상화 촉구
“정부, 의사 복귀 설득방법 바꾸고
의료계, 원점 재검토만 주장 안 돼”
의료현장 복귀 전공의 7.1% 불과
복지부 “조만간 소통 창구 만들 것”
의·정 갈등 속에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이탈한 지 100일을 넘기면서 환자들이 “이젠 강대강 대치를 멈춰 달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정부는 그간 행정처분과 수련제도 개선 등 강온 전략을 거듭하며 복귀를 촉구했지만, 현재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은 전체의 7%에 불과하다. 이미 2025학년도 대입 의대정원이 확정됐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증원에 따른 투쟁의 의미로 촛불시위에 나서면서 양측 갈등이 확산할 여지마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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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지 100일째를 맞은 29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의료 정상화하고 개혁 머리 맞대야”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등을 아우르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29일 성명에서 “환자들은 의·정 갈등 장기화의 조속한 해결을 원한다”고 촉구했다.
연합회는 특히 “서울고법이 16일 의대정원 2000명 증원·배분 결정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에 대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후에도 의료계와 정부는 여전히 대치 상태에 있다”며 “전공의 집단행동이 100일째 이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연합회는 환자의 어려움과 불편을 해소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정부와 의료계 양측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계와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 규모를 놓고 벌여온 소모적 강대강 대치를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한다”며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 자체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응급, 중증외상, 중증소아, 분만, 흉부외과 등과 같이 의료사고 위험이 높고 근무 환경이 열악하며 개원의에 비해 수익이 적은 필수의료를 살릴 방법을 찾아 의대정원 증원과 함께 시행해야 하고, 의료계는 ‘원점 재검토’나 계속적인 집단행동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좋은 의료환경을 만들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자단체에선 “정부가 100일 동안 의료현장에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전공의들에게 마냥 돌아오라고 호소할 게 아니라 설득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형병원에 전문의를 얼마나, 어떻게 배치할지 구체적인 안을 발표해 전공의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만 주장하는 것은 그저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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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이탈한 지 100일째인 29일 서울 시내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
◆전공의 7.1%만 의료현장에
전공의들이 2월20일 집단이탈한 이후 의료현장에 복귀한 전공의들은 극소수다. 정부가 전공의들에 대한 ‘유연한 처분’을 공식화하기 전까지 파악한 이탈 전공의는 1만1900여명으로 전체의 93%에 달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아직 소수이지만 현장으로 복귀하고 있는 전공의의 수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며 “100개 수련병원의 보고에 따르면 현장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는 4월30일 577명에서 5월28일 699명으로 지난 1개월간 122명이 늘어났다. 211개 모든 수련병원에서는 총 973명이 근무 중이고 전체 전공의의 7.1%”라고 밝혔다.
정부는 전공의 복귀와 더불어 “의료개혁에 동참해달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증원 전면 재검토가 먼저라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이날 개최한 ‘모두를 위한 의료개혁, 우리가 처한 현실과 미래’ 심포지엄에 참석한 강준 복지부 의료개혁총괄과장은 “정부는 지난달 출범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역량을 집결해 개혁 과제를 구체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있다. 상황이 정리되면 의사들을 모시고 소통 창구를 다양하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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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100일째인 29일 부산 한 대학병원의 병실이 비어 있다. 환자용 냉장고에 곰팡이가 필 것을 우려한 직원들은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놨다. 연합뉴스 |
이에 안덕선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는 “지금까지 정권마다 대통령·국무총리 직속 개혁위원회가 많이 열렸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정부와 전문직(의사) 간 관계 설정이 없었고, 급진적으로 단기간 성과를 추구했기 때문”이라며 “의사들이 십수년간 의견을 묵살당했기 때문에 상호 신뢰를 다지고 회복하기 위해 정부가 뭔가 능동적으로 보여 주기 전에는 (의사가) 쉽사리 참여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은 사직 처리가 되지 않아 다른 의료기관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일부 전공의들은 과외 등 아르바이트에 나서거나 생활고를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은 2일부터 ‘전공의 지원 전용 콜센터’ 등을 통해 생계지원사업 신청을 받고 있다. 특히 긴급생계지원금 10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에는 전공의 2900여명이 지원했고, 본인 확인 등을 거쳐 최근까지 280명에게 100만원씩 지급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