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군대는 아이들을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낼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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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군에 갔다. 2004년 갓 태어난 아들을 보고 가슴이 벅차오르던 날을 기억하는데 벌써 스무 해가 지났다. 아들은 가까운 친구와 같이 가고 싶어서 '동반입대'를 신청했다. 몇 차례 탈락한 끝에 마지막으로 신청하여 정해진 곳이 화천이다.
지난 5월 14일 보병 제7사단 신병교육대로 입대했다. 부대가 공사 중이라 안에 들어갈 수 없어 부대 앞에 아들을 내려주고 곧바로 차를 돌려 나왔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드라이브 스루'로 헤어졌다. 나중에 보니 잠깐 내려서 안고 어깨를 두드려 줄 수 있었는데 경황이 없어 아들과 악수만 하고 보내고 말았다.
▲ 화천 7사단 신병교육대 앞 교회 |
ⓒ 박영호 |
요즘은 '더 캠프'라는 앱을 통해서 한 주가 지나면 사진이 하나씩 올라온다. 살짝 군인 아저씨 티가 난다. 한편으로 대견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아들 얼굴에 답답하고 막막한 심정이 드러나 보인다. 이런 사진을 찍느라 억지 웃음을 짓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아들을 군에 보내고 나니 신병교육대에서 잇달아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 수류탄 투척 훈련을 받다가 사고가 났을 땐 중대장이 신속하게 연습용으로 바꾼다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12사단에서 얼차려 받다가 훈련병이 죽었는데 아직도 별다른 메시지가 올라 오지 않았다.
걱정스럽고 화가 난다. 2024년에 얼차려로 사망 사고가 일어나는 군대라니 말이다. 1991년 1월, 나도 화천에 있는 제27사단 신병교육대 훈련병이었다. 쌍팔년도보다 나아졌다고 했으나 여전히 온갖 얼차려가 난무하던 시절이다.
'침상 3선에 정렬'해서 수시로 머리를 박던 시절에도 훈련병에게 완전군장 구보를 시키는 지휘관은 없었다. 아파서 열외 되는 병사도 있었다. 이등병 시절엔 아무 일도 시키지 않는 '침상 대기'도 있었다.
기사를 보니 군장 무게를 늘리려 책을 넣었다고 한다. 요즘 애들 체력이 약해서 난 사고란 어이없는 댓글도 있다. 욕이 저절로 나온다. 기사를 찾다가 보니 24-9기 우리 아들과 같은 기수다. 제발 이깟 일로 지휘관에게 책임을 물으면 안 된다는 헛소리는 하지 말자.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더 캠프'에 위문편지를 쓰고 나중에 책으로 만들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 하지만 위문편지를 읽으며 느꼈던 말랑말랑한 감성을 아들도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손글씨로 편지를 썼다. 그냥 '아들에게'로 시작하면 밋밋해서 앞에 붙일 수식어를 생각해 보았다. '자랑스러운', '보고 싶은', '전선에 있는' 고민 끝에 결국 '사랑하는 아들에게'라고 적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어린 아이일 때는 많이 해주다가 자라고 난 다음엔 좀처럼 하지 않았다.
모든 훈련병은 누군가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아들이다. 이런 소중한 아들을 불러 모은 나라와 군대는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낼 책임이 있다. 당연히 이상한 명령을 내려서 위험에 빠트려서도 안 된다. 비록 규칙과 명령을 어겼다고 하더라도 체벌해서는 안 된다.
부하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 지휘관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물며 부주의나 과실로 나아가 부당한 명령으로 부하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더욱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이 땅의 모든 아들이 흔쾌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부모는 안심하고 보낼 수 있다.
아들에게 당부했다. 이제 대한민국 군대는 많이 좋아졌다. 아빠가 군에 있을 때처럼 억지로 참지 마라.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참을 수 없이 힘들면 못 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무조건 참는 것을 미련한 일이다. 부디 내 생각처럼 대한민국 군대가 많이 좋아졌기를 아니라면 빨리 좋아지길 간절하게 바란다.
바람이 하나 더 있다. 아들과 동반입대한 친구는 다른 소대에 배치되었다. 자대는 반드시 '동반입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같은 소대에 배치되어 서로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춘천에서 화천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겨레리 공원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푯말에 붙여진 이름은 '사랑나무'다. 아들을 데리고 가다가 잠시 머무르며 사진을 찍었다. 아들이 병역을 마치고 사랑나무처럼 늠름한 모습으로 돌아올 날을 손꼽으며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