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출신 대학, 테크니온 공대가 1119명으로 최다
美 스탠퍼드대 671명으로 2위
스타트업 강국이 사실상 AI 주도
전 세계 인공지능(AI) 산업을 이끄는 엔비디아는 대만 출신의 젠슨 황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기업이다. 이 회사 임직원 3만여 명의 출신 대학을 분석해 보니, 미국이나 대만이 아닌 이스라엘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본지가 글로벌 채용 플랫폼 링크트인을 통해 분석한 결과, 엔비디아 임직원 3만2245명(링크트인 가입 기준) 중 이스라엘의 명문 테크니온 공대 출신이 1119명으로 가장 많았다. 둘째로 많은 미국 스탠퍼드대 출신(671명)의 두 배 가까운 숫자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 출신도 506명이나 됐다.
그래픽=백형선
이들 상당수는 엔비디아가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영입됐다. 엔비디아와 ‘AI 왕좌’를 다투는 마이크로소프트(MS)에도 테크니온 공대 출신이 697명 있다. MS 내 출신 대학 순위로는 9위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인구 930만 이스라엘이 막강한 기술력과 인적 네트워크로 AI 산업의 중심에 섰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김도연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은 “이스라엘은 지정학적 이유로 대기업이 없지만 스타트업이 융성한 나라”라며 “이들의 엘리트 교육이 소수의 인재가 이끄는 AI 산업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인공지능(AI) 산업에서 이스라엘의 존재감은 단순히 엔비디아의 출신 대학 숫자가 아니라, 이들이 실질적으로 기여한 기술을 뜯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현재 엔비디아 실적의 대부분은 데이터센터 사업에서 나온다. 올해 1분기 매출 226억 달러 중 87%가 AI 가속기(AI 반도체)가 대량으로 들어간 데이터센터 매출이다. 엔비디아의 AI 반도체가 경쟁사보다 뛰어난 성능으로 시장을 장악한 배경에 2019년 70억달러(약 10조원)에 인수한 이스라엘 스타트업 ‘멜라녹스’가 있다.
엔비디아를 키운 이스라엘 기술력
초기 AI 가속기의 가장 큰 문제는 AI 학습 때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를 원활하게 처리하는 것이었다. 멜라녹스는 데이터센터 내에서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메모리 반도체(HBM) 간 원활한 데이터 처리를 돕는 장치(DPU)를 선보인 곳이다. 이 기술이 이른바 ‘데이터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22년 말 이후 빅테크 간에 생성형 AI를 위한 대형언어모델(LLM) 개발 경쟁이 불붙으면서 멜라녹스의 기술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1999년 설립된 멜라녹스는 창립자인 에얄 월드먼을 비롯해 주요 경영진이 테크니온 출신이다. 멜라녹스 직원들은 대부분 현재까지도 엔비디아 4개 사업부 중 가장 규모가 큰 데이터센터 사업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올해 초 외신에 “멜라녹스는 데이터센터 전체를 거대한 수퍼칩으로 만들어 최신 AI 수퍼컴퓨터를 구현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엔비디아의 기술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최근에도 이스라엘 소프트웨어 스타트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하고 있다. 올해 4월에는 텔아비브 대학 연구원들이 세운 스타트업 ‘런AI(Run:ai)’를 7억달러에 인수했다. 이 회사는 AI 가속기가 데이터를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5월에는 딥러닝 개발 플랫폼을 만든 이스라엘 스타트업 ‘데시(Deci)’를 사들였다. 데시의 플랫폼은 AI 개발자들이 클라우드·모바일 등 여러 환경에서 보다 최적화된 AI 모델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개발자용 소프트웨어 ‘쿠다(CUDA)’로 구축한 ‘엔비디아 AI 생태계’를 더 견고하게 만드는 데 데시의 기술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MS·애플도 이스라엘 인재 확보
이스라엘 출신들은 다른 빅테크에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MS에서도 이스라엘 출신들이 AI 혁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MS 본사가 있는 시애틀에 위치한 워싱턴대학 출신(5377명)을 제외한 스탠퍼드대(1159명), MIT(904명), 하버드대(790명) 출신 직원들과 함께 테크니온 출신 직원(697명)과 텔아비브 대학 출신 직원(482명)도 주류에 속한다.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애플은 스탠퍼드대(2227명), UC버클리(2133명), 새너제이 주립대(2108명) 출신 직원이 가장 많지만 테크니온 출신 직원도 817명으로 MIT(939명)와 비슷한 규모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고 있는 이스라엘 AI 스타트업들은 잇따라 빅테크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인텔은 2019년 AI 반도체 스타트업 하바나랩스를 인수해 AI 반도체 ‘가우디’를 만들었다. 인텔은 가우디칩이 엔비디아에 대항할 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IBM과 시스코가 각각 이스라엘 보안 스타트업 폴라시큐리티, 라이트스핀을 인수했다. 생성형 AI 스타트업 브리아 역시 이스라엘 회사로 지난 2월 삼성과 미래에셋 투자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