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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4-06-29 18: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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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엄마가 구해온 ‘이것’에 병드는 한국
내용

 

입력2024.06.28. 오후 10:27

 

수능 해킹 / 문호진·단요 지음 / 창비 펴냄

 


 

 

최근 국내에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치료하는 데 쓰이는 약물 ‘메틸페니데이트’의 처방량이 급증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만 2.5배로 늘었을 정도다. 얼핏 보면 ADHD 환자가 늘어난 것 같지만 월별 처방량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처방량이 매해 9월부터 증가세를 보이다가 11월 하순에는 다시 감소하기 때문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매년 11월 초중순에 시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간과할 수 없는 패턴이다. 메틸페니데이트는 특성상 고도의 집중 상태를 유발하는데 이 때문에 실제로 ‘공부 잘 되는 약’으로 불리며 암암리에 팔려 오남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신간 ‘수능 해킹’은 수능 사설 모의고사 출제 경험이 있는 현직 의사와 소설가가 현행 수능의 문제점과 이로 인한 부실 교육, 사교육 성행 등 근본적인 문제를 파헤친 책이다. 학생과 교사, 전·현직 사교육 종사자들 인터뷰와 방대한 양의 자료가 담겼다. 이들은 1994년 정식 도입된 수능이 지난 30년 간 진보와 보수 정권의 첨예한 갈등 속에서 누더기가 된 입시 제도 아래 어떻게 변질돼 지금에 이르렀는지 살펴본다. 수능이 대학 교육을 수학하기 위한 최소한의 학습능력과 지식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도입된 시험이지만, 여기에 정작 필요한 교육은 빠지고 입시 경쟁을 부추기는 ‘줄 세우기’만 남았다는 게 골자다.

저자들은 수능이 복잡한 사고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문제가 아닌, 단순한 지식을 까다롭게 묻는 문제들로 오히려 교육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복잡한 퍼즐식 문항을 도구 삼아 점수 분포를 조절하고 있지요. 등급 커트라인에만 주목하면 ‘약한 불수능’과 적당 난이도 사이를 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퍼즐을 걷어내고 그 뒤편의 지식과 논리를 들여다보면 더없이 쉬운 수능이 된다는 겁니다. 즉 지금의 수능은 ‘불수능’일지 몰라도 ‘어려운 수능’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이런 형식의 시험은 교육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학습능력 검증의 기능도 없다는 것이다.

 

 

책은 1778년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했던 조선시대 실학자 박제가의 저서 ‘북학의’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옛날의 시험은 인재를 얻으려는 방법이었지만 오늘날의 시험은 그 반대다. 어릴 때부터 시험 보는 법만을 가르쳐서 몇 해 내도록 그것만 생각하게 만들면 그 후로는 병을 고칠 수 없다. 운 좋게 시험에 붙으면 그 날부로 배운 바를 모두 잊는다. 평생의 정기를 시험에 소진했는데도 정작 그 사람을 쓸 곳이 사라지는 셈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입시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수능은 이처럼 본연의 목적을 잃은 상태지만, 입시생들과 학부모들은 앞만 보고 달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국사회에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학벌에 밀려 충분한 사회적 지위를 얻지 못할 것이란 공포에 휩싸여 있는 탓이다. 그 불안 심리를 활용해 모두를 소모적인 전쟁에 참여하도록 하면서 덩치를 키운 건 다름 아닌 사교육계다. 놀랍게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같은 불안 심리는 한국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 줬지만, 그 안의 병폐화된 문제가 서서히 한국을 붕괴시키고 있다는 게 저자들의 경고다.

0.7명대로 떨어진 합계출산율과 40%에 가까워지는 수능 응시 재수·삼수 등 N수생 비율, 역대 최고를 기록한 사교육비 규모가 한국 대학 입시의 현주소를 말해 준다. 책은 “지금은 어떤 목적을 위해 누구를 가르치는지, 가르침의 방식은 어떠해야 할지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세워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사교육 문제나 공교육의 무능력에 대한 논의조차도 그릇된 입시 제도를 고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편집인2024-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