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저녁, 커다란 달걀처럼 생겨 ‘빅에그’라고 불리는 일본 도쿄돔이 들썩였다. 최정상 인기 스타만 설 수 있다는 ‘꿈의 무대’에 오른 주인공은 그룹 뉴진스. 이들은 26~27일 이곳에서 팬미팅 ‘버니즈 캠프’ 공연을 펼쳤다. 일찌감치 매진돼 시야제한석까지 연 끝에 이틀간 9만1200여명이 들었다. 데뷔한 지 2년도 안 된 신인 그룹이, 일본 데뷔 닷새 만에 이룬 놀라운 성과다. 뉴진스는 일본 이외 아티스트 중 데뷔 이후 최단 기간인 1년11개월 만에 도쿄돔에 입성하는 기록을 썼다.
그룹 뉴진스가 지난 26~27일 일본 도쿄돔에서 팬미팅 ‘버니즈 캠프’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어도어 제공
뉴진스는 오랜만에 5인조 완전체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발등 부상으로 빠졌던 막내 혜인이 합류했다. 2022년 데뷔곡 ‘어텐션’으로 시작한 무대는 2시간30분간 22곡을 쏟아내는 정식 공연과 다를 바 없었다. 관객은 대부분 젊은층이었고, 남성이 60~70%는 돼 보였다. 관객들은 도쿄돔이 떠나갈 듯 큰 함성을 지르며 형형색색 응원봉을 흔들었다. 거의 모든 곡의 ‘떼창’을 이끌어낸 뉴진스는 이미 슈퍼스타였다.
2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뉴진스 팬미팅 ‘버니즈 캠프’를 찾은 팬들이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 서정민 기자
백미는 각 멤버들이 평소와 다른 매력을 뽐낸 솔로 무대였다. 민지는 요즘 일본에서 떠오르고 있는 신예 싱어송라이터 바운디의 히트곡 ‘무희’를 커버해 큰 호응을 얻었다. 하니는 일본 가수 마쓰다 세이코의 1980년 히트곡 ‘푸른 산호초’를 불러 이날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일본 국민 아이돌의 추억 어린 노래는, ‘디토’가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남녀노소 모두 아련한 향수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일본 대중음악의 과거와 현재가 한국에서 온 케이(K)팝 신성과 접속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공연을 본 쿠와하타 유카 한국엔터테인먼트 전문 기자는 “최첨단 케이팝이면서도 2000년 즈음 제이(J)팝의 정겨운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일본에 ‘뉴진스 아저씨’라 불리는 중년 남성 팬이 많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10~20대 남녀 관객이 대다수였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지금 일본에서 뉴진스의 인기는 특히 젊은층 사이에서 폭발적이다. 이날 공연 전 찾은 도쿄 시부야 타워레코드 음반점 5층은 유난히 더 붐볐다. 한층 전체가 케이팝 코너인데, 직원들은 매대에 뉴진스 앨범을 채워넣느라 분주했다. 젊은 손님들은 수시로 앨범을 집어들고 계산대에 줄을 섰다. 뉴진스 앨범 5장을 구매한 한 18살 남성은 “6개월 전부터 케이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얼마 전 일본 방송에 나온 뉴진스를 보고 노래와 춤이 좋아서 단숨에 팬이 됐다”고 말했다.
인근 뉴진스 팝업스토어가 마련된 ‘라인프렌즈 스퀘어 시부야’에도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사전 예약만 받는 지하 1층 매장은 7월15일 종료일까지 모든 예약이 마감됐고, 현장 방문 예약으로 운영하는 1·2층 매장은 매일 아침 10시 이전에 번호표가 마감된다고 한다. 번호표를 받은 이들이 시간대별 입장을 위해 줄 서서 대기 중이었다. 매장에는 일본 팝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 스트리트 패션 디자이너 후지와라 히로시와 협업한 각종 굿즈가 판매되고 있었다. 오사카에서 온 리사(27)는 “작년에 유튜브로 접하고 팬이 됐다. 케이팝 그룹들이 대체로 비슷비슷한데, 뉴진스는 레트로 감성의 다른 색깔이어서 좋다”고 말했다.
뉴진스가 일본 데뷔 싱글 ‘슈퍼내추럴’을 발매한 건 지난 21일이다. 일본 방송에 출연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이전에 일본에서 활동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현상은 눈여겨 볼 만한 지점이다. 김성환 평론가는 “케이팝 그룹이 일본 시장에 진출할 때는 일본어 음반을 내고 현지 방송에 자주 출연하면서 인지도와 팬층을 넓혀 인기를 얻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뉴진스는 일본 활동 시작 전에 이미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 일본 시장에선 케이팝을 넘어 글로벌 팝스타로 먼저 받아들였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뉴진스만이 아니다. 일본 젊은세대가 유튜브와 에스엔에스(SNS)로 글로벌 콘텐츠를 즐기면서 케이팝 바람은 더 역동적이 됐다. 케이팝 인기 지표 집계 사이트 케이팝레이더를 운영하는 스페이스오디티의 김홍기 대표는 “지난해 유튜브 조회수로 보면, 일본은 한국을 제외하고 세계 1위 케이팝 소비국이다. 과거엔 일본 팬덤이 동방신기 등 몇몇 그룹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3세대 그룹의 탄탄한 입지를 바탕으로 뉴진스 등 4세대 그룹들이 대거 인기를 끌면서 젊은층이 케이팝 장르 자체를 일상적으로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짚었다.
쿠와하타 기자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주로 도시인들이 케이팝을 좋아했다면, 팬데믹을 거치면서 평소 콘서트에 가기 힘든 지역의 젊은이들도 디지털 미디어, 비대면 콘서트 등으로 케이팝을 접하면서 좋아하게 됐다. 이제는 지역 고등학교 축제에서도 케이팝 댄스가 인기일 정도로 팬층이 젊어지고 지역적으로 넓어졌다”고 전했다. 그는 “에스엔에스를 통해 좋아하는 것을 확산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케이팝의 인기는 갈수록 더 퍼져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