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 유령이 내게로 왔어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김경연 옮김 l 풀빛(2005)
현재의 어린이문학을 따라 읽다 여기가 어디지 싶어 아득해질 때가 있다. 물론 마녀, 마법, 몬스터 등 동화의 소재도 다양해졌고 재기발랄한 작가도 속속 등장했다.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도입된 이후 어린이 독자의 호응이 높아지며 시리즈 동화도 선보였다.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이야기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동화도 속속 등장헸다. 자극적인 음식에 금방 질리듯 동화를 읽다 목이 마를 때가 있다. 그때마다 책장 앞에서 서성인다. 1970년 등단 이후 독일 청소년문학상, 1984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2003년 제1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을 받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동화를 꺼내 다시 읽어본다.
작가는 평생 100여 권의 어린이책을 썼고 국내에도 많은 책이 번역 출간되어 있다(물론 그중 많은 책이 절판상태다). 또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을 문학의 주제로 삼아왔다. ‘그 개가 온다’에서는 대상이 학교였고, ‘오이대왕’에서는 아버지였다. 어린이를 천진난만하게 혹은 순진한 천사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도리어 선생의 말을 의심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어린이를 그려냈다. 결코 어린이의 현실에 눈감지 않았고 가난하거나, 결손 가정이거나,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어린이의 대변자 노릇을 했다.
‘수호 유령이 내게로 왔어’는 묵직한 주제의식이 있지만 경쾌한 작품이다. 주인공인 나스티는 겁이 많다. 반면 친구인 티나는 수호천사가 자기를 지켜주니 겁날 게 없다고 한다. 많고 많은 성인 중에 수호천사를 고르면 될 일이지만 나스티의 부모는 종교가 없다. 평범하지 않은 가족을 둔 주인공에게 뭔가 기이한 일이 생기고, 판타지 속에서 어린이가 힘과 위로를 얻는 구성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가 작품에서 즐겨 사용하는 설정이다.
과연 나스티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 작가는 수호천사 대신 수호 유령 로자 리들을 보낸다. 오싹한 유령이 절대 아니다. 나치가 오스트리아에서 정권을 잡았던 시절, 유대인 피쉴이 나치 돌격대에게 수모를 당했다.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 로자 리들은 피쉴을 도와주러 가다가 그만 전차에 치여 죽었다. 하지만 절실하게 할 일이 있는 사람, 분노와 노여움에 차 있던 사람은 제대로 죽을 수 없는 법. 로자 리들은 유령이 되어 그녀가 살던 다세대 주택에서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애를 쓴다.
수호 유령 로자 리들과 친구가 된 나스티는 달라진다. 더는 개도, 혼자 있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영어 선생이 예고 없이 단어 시험을 보고 반 친구 토미에게 에프(F)를 주는 일에 대해서 항의한다. “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기다릴 수는 없다. 세상 대부분의 불행은 사람들이 입 다물고 구경만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뭔가 하기를 기다리는 데서 온다”라고 했던 로자 리들의 말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사는 게 힘들면 고향에 가고 싶듯,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고전을 읽는다. 어린이들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나 크리스티나 뇌스틀링거나 미하엘 엔데 같은 작가를 만나도록 도와줘야 하는 이유다. 현실에서 수호 유령은 없어도 책 속에서 로자 리들은 만날 수 있지 않은가. 초등 5~6학년.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