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정부가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파병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등 대 러시아 강경 대응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북러 협력으로 한반도 안보가 위협받고 있는 만큼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전쟁 이후 상황까지 내다보는 장기적 시각에서 러시아를 확실한 적대국으로 돌리는 것에 대한 우려도 외교가에서 제기된다.
31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서로 약속한 우크라이나 특사 파견과 관련해 세부 사항 논의를 이미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우크라이나 특사단 관련) 세부 사항은 외교 채널로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특사가 한국에 오면 우선 북한군 관련 정보를 공유할 것으로 보인다. 또 우리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 구상도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북한군 활동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지원 수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정부는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더 유연하게 북한군의 활동 여하에 따라 검토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대통령실은 한발 물러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날(30일) 기자들과 만나 "무기 지원 논의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며 "논의한다고 하더라도 1차적으로 방어용 무기 지원이 상식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분명히 대한민국 안보에 중요한 시그널을 보내는 단계에 와 있다"며 "미국의 뜻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명분과 국익이 더더욱 중요하다. 상황을 관찰하면서 단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조치들이 틀리다고 보지 않고 꼭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평양 로이터=뉴스1) 정지윤 기자 = 19일 북한 평양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갈라 콘서트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4.06.19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평양 로이터=뉴스1) 정지윤 기자
정부의 전면적인 '반러·친우크라' 행보 가능성에 외교가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언젠가는 끝날텐데, 그 이후 러시아와 우리나라의 관계 회복 필요성도 미리 고려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러 관계 전문가는 "우리가 지형적으로 러시아와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라면 러시아와 적대적인 관계가 된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러시아와 밀접할 뿐만 아니라 사이에 북한을 두고 있는 관계"라며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게 바로 우리 외교의 가장 중요한 전략 중 하나였다. 그런데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순간 북러의 밀착을 인정하고 우리가 그 반대편에 서겠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라서 우리나라가 굉장히 안보적으로 불안해진다"고 지적했다.
임은정 공주대 국제학부 교수는 "우리는 분단국가이고 전쟁을 경험한 국가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자유, 평화의 원리 원칙을 대내외에 공표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며 "하지만 러시아는 우리나라와 안보·경제적으로 상관관계가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되돌리기 어려운 수준으로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극히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관 출신의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살상 무기 공급 가능성 같은 걸 언급해서 과연 우리가 어떤 국가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를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현 정권이 주장하는 '가치 외교'는 한미일 협력과 북중러 대립 관계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 "미·중·일·러가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고 그 나라들과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해 가느냐는 우리 외교의 핵심인데, 러시아와의 관계도 현실적인 시각에서 할 수 있는 한 좋은 쪽으로 이끌고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